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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This is the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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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달로이안은 만달로리아의 사람들이란 의미로, 이들은 혈연의 종족이 아니다.  다양한 곳에서 온, 다양한 사연의 사람이 모인 부족이다. 물론 귀족, 왕족이 존재한다. 제국에 의해 부족이 멸망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주인공은 현상금 사냥꾼으로 생을 지속하는 사람이다. 부족이 이렇게 흩어지고, 오늘을 모르는 생활의 현상금 사냥꾼에게 부족의 계율이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딱히 부족을 재건할 마음도 없고 지금이 좋다고 말하면서.

“This is the way!"

판단의 갈림길에서 입버릇처럼 중얼거리는 말이다. 담당 사명은 끝까지 수행한다. 전투 부족으로서의 만달로이안. 개인의 전투 역량은 웬만한 종족보다 높다. 더욱이 그들의 갑옷은 광선검에도 베어지지 않아 프리미엄이 연일 고공행진이다. 소위, 전투 혹은 싸움으로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역량이다. 그럼에도 부족의 계율을 지킨다.

상대 결투 요청에 응해야 한다
대의를 위한 만달로리안의 부름에 응하기
일족 안위에 기여하기
타인 앞에서 갑옷을 벗지 않는다
가족과 스스로를 지키기
자식을 만달로리안으로 키우기



만달로리안 부족의 재건에 관심이 없다. 많은 위기에 주변의 도움으로 살아났지만, 이를 그의 역량에 합한다면, 그는 결코 약하지 않다. 이런 역량을 가지고 ‘지금 상태가 좋다’며 현상금 사냥의 삶을 산다. 그러면서도, 만달로리안 계율을 철저히 지킨다. 정체성의 기준을 만달로리안에 두는 것인가? 어린 시절 고향이 공격을 받고 부모가 죽은 후 그를 살리고 키운 이가 만달로리안이었다. 그는 만달로리안으로 성장했다. 여기서 그의 가치관을 알 수 있다. 그는 은혜를 잊지 않고 의지가 굳은 인물이다. 홀로 고독하면서도 부족의 계율을 지키며 사는 모습이 그의 정체성이라기보다, 굳은 의지가 그의 정체성이라 생각한다.

이 영화가 아니더라도, 의지가 굳은 사람은 의지가 된다. 흔들리지 않는 누군가 옆에 있음이 마음 든든하게 한다. 왜 그럴까? 나는 흔들리고 시류에 휩쓸리고 있기 때문이다. 닻을 내리지 못해 해류에 흔들리기 때문이다. 닻을 내릴 수 있다면 육지에 건너가 쉬어도 부담이 없다. 그 사이 다시 출발할 힘을 축적할 수 있다. 다시 모험을 떠나도 되돌아올 곳이 있어 모험의 목적성은 강해진다. 돌아갈 곳이 있으니 다치고 외로울 때도 겁나지 않다. 마음이 안정된다. 어쩌면 결혼이 생활의 안정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닻을 내릴 수 있을 때 안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인간의 마음에 흔들림 없는 굳건함을 생기게 할까? 마음의 닻을 내릴 계기는 무엇일까? 타고난 본성이라 후천적 노력으로는 가질 수 없는 것인가?

타인의 존재는 양날의 검이다. 타인의 존재가 홀로 이룰 수 없는 일을 이루게 한다. 협력을 얻기 위해서는 타인과 손을 잡아야 하는데, 손을 잡게 하는 계기는 상호간 마음의 연결 여부에 달려있다. 각자 가진 장점이 서로에게 필요한 경우, 타인에게 얻을 것은 없어도 내 장점이 타인에게 필요하고 그에 따른 보답이 내게 유용할 경우 등이 있을 것이다. 같은 인간이므로 같은 영역에 공존하는 존재로서 마음이 아니라 관계가 형성될 수도 있겠다. 

주변에 신경이 쓰인다. 되도록 좋은 인상을 주는 것이 사전 조건(마음이 연결되거나 손을 잡는 과정)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가 나의 제안에 주목할 조건이 될 수 있다. 이런 일련의 이야기를 제외하고, 타인의 일에 관심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그 일에 흥미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 세상은 새로운 일이 자주 발생하고 개인의 기호에 따라 관심을 갖게 된다. 말을 하게 된다. 말을 건넨다. 일종의 간섭이 발생한다. 이것이 서로를 알게 하고 마음이 연결될 계기가 되고, 갈등의 원인이 된다. 누군가는 자신에게 집중하기보다 타인의 일에 조언(?)을 하는 행동을 습관처럼 한다. 목적은 매번 다르다. 혹은 상대가 아주 가까운 존재, 같은 구성원일 경우가 있다. 혹은 타인의 행동이 그냥 싫을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타인의 삶과 얽히고 섥히다 보면, 부유하게 된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자신의 가치관에 비해 타인이 잘못되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나중에는 자신이 왜 타인의 삶에 그렇게 관계하는지 이유를 설명할 수도 없다. 이런 자기 주도적 행동 외에도, 타인의 간섭으로 내키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마음에서 굴복하든, 당시 상황에서 자신의 의지를 발휘할 수 없다고 판단하든, 타인에게 나의 선택권이 이양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반복되면 간섭에 간섭이 연결되어 순환이 시작된다. 수많은 계기를 이야기했지만 절대적인 계기는 없다. 자신의 의지가 발휘되지 않은 행동이 반복되어 ‘어쩔 수 없어’ 단계로 넘어가면 우리는 시류에 흔들리고 있음이다. 여기서 이탈하기는 탈출하기는 쉽지 않다. 우선, 이탈 방법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빠른 전환이 어렵다. 익숙함의 힘이다. 몸은 힘들어도 생활은 지속되기 때문에 그 영향력은 무섭다.


그렇다면, 만달로리안처럼 신념을 가진 삶이 최선인가? 만달로리안이 겪는 고난과 어려움은 그 신념이 영향을 미친 경우도 많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굳이 정석대로 행동할 필요가 있나 싶다. 어쩌면 유연하지 않은 태도 때문에 옆에서 답답하게 보는 것을 제외하고, 스스로가 답답하기도 할 것이다. 상황에 따라 경우에 따라 유연하게 움직인다면, 보다 현실적인 이점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일은 인과 관계의 지배하에 있으므로, 모든 행동은 영향력을 갖고, 그 영향력의 범위는 다른 결과의 원인이 된다. 이것이 함께 삶이 가져오는 연쇄 순환이다.

어렵다, 삶을 사는 것은. 단지 행복하고 즐겁게 미소 지으며 호탕하게 웃으며 살고 싶을 뿐인데. 수학처럼 정답이 있었으면 싶다. 어쩌면 수학처럼, 정답을 풀어낼 공식이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I'm 깨비




#영화 #만달로리안 #계율 #길 #정체성 #의지 #영향 #신념 #유연성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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