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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의지로 태어났으니 최선을 다하려 한다지난 글 2019. 7. 6. 21:53728x90반응형SMALL
아이를 가진다는 것부터 생각해 봤다. 사실 어찌 생각하면 부끄러울 수 있는 일이었다.
제왕절개를 통해 아이를 낳기로 결정을 하고 수술 전날 밤이었다. 나는 술에 취해 있었다. 내 고민 때문에 모인 자리는 아니었다. 회식 자리 같은 술자리였다. 내일이 아내의 수술날인데 옆에서 안심도 시키고 위로도 해야 했겠지만, 야근에 아내 병원이 있는 군산까지 내려갈 수 없었다. 그것이 이유였다. 술이 한 순배, 두 순배 돌았다. 당연히 회사 이야기가 흘렀다. 고생스러운 일들이 공유됐고 서로 위로도 하고 성토도 했고 즐거워 웃기도 했다. 그래, 그냥 평소 같은 회식 자리였다. 시계가 9시를 넘었고, 나는 내일 아침 일찍 군산으로 내려간다 말하고 먼저 일어났다. 모두들 알고 있었으니 붙잡거나 하지는 않았다. 더구나 내일 큰일이 있어서 인지 난 공짜 술을 마시게 됐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자리를 나왔다. 버스 정류장으로 지친 몸을 끌다시피 하며 터벅거렸다. 그리고 아내 생각이 났다. 그리고 내일이면 내가 아빠가 된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알고 그리고 출산 전날까지 난 아내 앞에서도 아내가 없는 자리에서도 그리고 어떤 자리에서도 표내지 않았다. 그런데 내 마음 어디에선가 무언가가 쌓였었나 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꽤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소주 1병 반 정도의 알코올이 혈관을 통해 흐르고 있었다. 나의 간은 그것을 해독하느라 열일 중일 것이다. 혈류 속도가 빨라져서 일까? 버스를 기다리는 내 마음이, 내 심장이 조금 전보다 더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버스 정류장을 벗어나는 나를 인지했다. 눈은 사람들이 적은 곳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길가 구석지로 가서는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미안하다, 너무 늦게 전화를 했다’ ‘아니 괜찮아. 나도 잠이 오지 않았어’ ‘그래도 내일이 수술인데....’
내 눈에서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뜬금없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나 겁이 나’로 시작된 내 말은 끊김 없이 계속됐다.
‘나 자신이 없어. 결혼하고 뉴욕에서 이야기했지. 난 누구 앞에 설 정도의 사람은 아니야. 그런데 내가 과연 무엇을 내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나 자신도 감당하지 못하는 네가.. 아마도 당신과 함께 사는 것이 내 맥시멈이야. 나 어떡하지? 내가 아빠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아이가 보고 배울 만한 행동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아이에게 조언을 할 수 있을까?’
눈물은 이미 멈추기엔 늦었다. 눈물 줄기가 굵어져 있었다. 목소리도 점점 더 막혀갔다. 그리고는,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비슷한 이야기를 약간씩 다르게 계속 말했던 것 같다.
‘괜찮아. 그런 마음 갖지 마. 우리는 잘 할 수 있어. 우리는 좋은 아빠 엄마가 될 거야. 지금까지 잘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잘 할 거야’ 이런 이야기를 아내가 했던 것 같다. 수술을 앞두고, 생애 처음으로 메스가 몸에 닿을 당사자가, 무엇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나에게 위로를 했다. 난 아내의 말을 듣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르는 상태였었다. 그리고는 아내의 위로를 뒤로하고 ‘내일 일찍 갈게’라며 전화를 끊었다.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전화는 주머니에 들어가지 못했다.
나의 불안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축복해야 할 날 전에 나는 과연 불안해 잠을 못 이루는 아내에게 무슨 말을 한 것일까? 난 그날 술에 취해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내 앞에서 멋쩍게 웃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 경험이 있어서 인지, 그것이 취중진담인지, 나는 아이를 내가 성장한 대로 대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성장한 과정이 불행하고 불운하며 고행의 길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한 가지 생각을 성장시켰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아이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존중하자.’
내 경험에서 보면, 사람은 절대 말로 무엇을 익히지 않는다. 사람은 보고 배우는 동물이다. 앞선 이들의 행동을 보고 인간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을 생각하고 배운다. 마치 ‘네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해도 되는 행동이기 때문이잖아’라고 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내 생활방식이나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뀐 것도 아니다. 작은 것부터 실천했다.
우리 주위에는 석학들이 연구한 훌륭한 육아법들이 잔뜩 있다. 국내의 사례뿐만 아니라 해외의 훌륭한 사례들도 잔뜩 있다. 열심히 읽고 내 경우에 대입을 해봤다. 그러나 그런 따라쟁이의 생활은 곧 막을 내린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성공 사례라는 것은, ‘누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내린 행동’의 결과이다. 육아 연구 결과는 ‘특정 피험자를 대상으로’ ‘어떤 환경 하에서’ ‘적용된 사항이 낳은 결과’이다. 즉, 타인의 성공 방법이 나의 성공 방법이 될 확률은 극히 낮다는 의미다. 그러니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른 결과가 나왔다. 물론, 내가 제대로 했는가의 의문이 들지만, 책에 있는 그대로 하진 않았고 내 상황에 맞춰 시행한 점은 시인하겠다. 그러나 나는 이론과 실제 속에서 한 가지를 깨닫게 됐다. 이 모든 육아 방법론의 바탕에는 ‘아이를 한 사람의 개체로 존중하라’는 중심 사상이 서 있다는 것이다.
아이의 말을 경청하고, 아이의 언어로 이야기를 하고, 아이가 마련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상의 환경 속에서 성장하도록 한다는 것은, 바로 아이를 존중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은 것부터 나의 방법을 생각해 내고 적용했다.
아이가 아직 유모차를 타고 다닐 때, 식당에 가서, 아이 몫의 음식을 따로 주문한다. 물론 대부분의 레스토랑이 아이 메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있더라도 ‘우리 아이’에게 딱 맞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식습관을 기억했다가 아이가 먹을 만한 것을 시킨다. 물론 남는다. 그것은 내가 먹었다. 그러나 그것부터 시작했다. 아내는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함께 레스토랑에 왔으니 각자 좋아하는 것을 먹을 이유는 충분하다.
우리 부부가 무언가 필요해서 상점에 간다. 그럼 아이에게도 골라보라고 한다. 결코 아이가 제대로 고르지 못할 거라는 선입관은 갖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꼭 물어봤다. ‘어디에 쓸 거야?’ ‘왜 선택한 거야?’ 앞에서 말한 대로 아이의 의지와 생각이 타인에게 폐가 되거나 법을 어기지 않으면 구매를 인정했다. 결코 부모의 기호나 ‘단지 아이가 그것을 구매해 갖는 것이 싫어서’라는 이유에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 만약 정말 반대를 해야 한다면 근거를 찾고 아이의 언어로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근거를 찾지 못했다면 결코 반대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이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반, 아내가 반의 유전자를 전했지만, 아이는 내가 아니며 아내가 아니다. 아이는 새로운 조합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존재이다. 소위 ‘나쁜’ 유전자를 전했다는 것이 밝혀지면 ‘미안해’라고 사과했다. 인력으로 어찌하지 못했더라도. 소위 ‘좋은’ 유전자를 전했다는 것이 밝혀지면, 결코 자랑하지 않고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모든 부모는 아이가 부모보다 나은 삶을 살길 바란다. 더 편한 삶을 살길 바란다. 결코 다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나는 약간 생각이 다르다.
잘 걷지 못하는 아이가 뛰려고 했을 때 뭐라고 할 것인가? 나는 우선 가만히 둔다. 성공적으로 목적지에 도달하기도 하지만 넘어져 무릎이 까지기도 한다. 한 번의 아픔으로 다음에 달릴 때 조심할 수도 있지만 여러 번의 실패를 겪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을 원천적으로 막지 않았다. 스스로 경험하고 생각하게 하고 싶었다. 내가 아무리 ‘지금 너는 겨우 걸을 수 있으니 뛰면 안 돼’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열심히 뒤를 쫓았다. 크게 다치지 않는 선을 유지하고 싶긴 했으므로. 그리로 뛰어가면 크게 다칠 수 있다고 예언하지 않았다. 그러나 명백한 상황에서는 사전에 막긴 했다. 그리고 웃는 얼굴로 아이를 안아 줬다. ‘잘 달리는데’라며. 경험에서 배울 기회를 가능한 막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14년째 아이와 생활하고 있다. 아이가 방에 있으면, 노크를 하고 허락을 구한다. 내가 혼자 방에 있을 때 아이가 노크할 때까지, 그 이후에도 그렇게 했다. 누구나 사생활이 있다. ‘가족’이라는 이름표가 결코 사적인 시간을 무단으로 침범할 권리 표는 아니다.
사람에게는 자신의 정체성 Identity를 유지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심적 공간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 의도가 아무리 좋더라도, 결코 그 공간을 침범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이의 의지와 판단으로 행한 것에 이유는 묻지만 결코 막지 않았다. 여기에는 ‘아이가 결코 그릇된 결정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전제가 있다. 아이는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14년 동안 아이는 타인에게 실례를 범하지 않고 법을 어기지 않는 우리와 함께 생활했다. 그것을 보고 큰 아이는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내 생각이었다. 내 생각대로 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나는 아이가 그 결과를 겪도록 놓아두었다. 예상되는 결과가 아이가 감당하기 힘들 것 같으면 명확한 근거를 대로 사전에 막긴 했지만, 적어도 내가 자라고 내가 보아온 타인의 경우보다는 폭을 넓게 잡았다 자신한다.
나는 아이의 행동을 사전에 막기보다 사후에 피드백을 한다. 피드백은 내 사견으로는 대단히 고급 기법이다. 과정을 파악하고 결과를 논하며 다시 그 행동을 할 때는 과거의 경험과 논한 내용으로 보다 나은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기법이다. 상위 기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리 명확한 근거를 내놓더라도, 사전에 하려는 행동이 막히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정부터 상한다. 명확한 근거가 제대로 판단에 적용되기 힘들다. 그러나 작은 일부터 혹은 큰일이라도 가능한 피드백을 주는 방식으로 먼저 경험하게 했다. 적어도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아이의 의지를 꺾으려 하지 않았다. 대신 질문을 하긴 한다. ‘응, 그렇게 해. 그런데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 나중에 이야기해 줄래?’
아이의 탄생은 부모의 동물적 행위를 통한다. 결코 자신의 의지로 이 세상에 나오지 않는다. 나는 ‘자애’라는 것이, ‘부모의 의지로 태어났으니 부모는 아이의 성장의 거름이 되어야 한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지로 태어났으니 조건 없이 사랑을 베풀어 아이가 행복해지는데 쉼 없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그것이 자애라고 생각한다. 효도라는 것은 지극히 유교적 철학이다. 누구나 지켜야 할 절대적 명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부모에게 복종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무조건 부모의 말에 복종하는 로봇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사랑의 결실’이지 않나? 집안의 대를 잇는다는 측면도 그렇다. 전적으로 부모의 의지다. 집안을 제대로 잇게 하려면 아이가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성의 동물로 성장해야 한다. 이성의 동물이란 무엇인가? 21세기 우리나라에 신분제는 없지만 천한 인간은 존재한다.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더불어 살아가는데 필요한 교육을 제대로 받고 몸에 익히고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을 천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이성의 동물이란, 올바른 방향성을 정해 생각하여 행동하며 피드백을 통해 더 나은 행동을 하는 동물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이성의 동물로 성장하도록 돕기 위해서는 부모도 이성의 동물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아이 앞에서는 세상의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먼저 결정해 버리고 위대한 예언자라도 된 것처럼 사전에 막아선다. 이렇게 해서는 결코 아이를 이성의 동물로 성장시킬 수 없다고 나는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존중받은 적이 없다면 실천하기 힘들다. 그래서 부모가 되려면 노력해야 한다. 피드백을 기억하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범법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이타적 인간까지는 목표로 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해는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이가 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먼저 행하면 아이도 행할 거라는 믿음도 가지고 있다. 그렇게 아이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존중하고 대등하게 대한다. 부모-자식이 상하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의지로 태어났으니 최선을 다하려 한다.반응형LIST'지난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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