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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침반은 항상 뒷주머니에 넣어 다니자
    지난 글 2017. 3. 31.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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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기의 첫 번째 계획: 아이를 가질래.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전통적인 방식으로 아이를 갖는 것, 즉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은 나에게 맞는 옷이 아니다. 남자를 골라보자. 수학을 전공한 가이. 그에게 정자를 받아 내가 스스로 수정을 하겠다.

    왜 수학의 길을 가지 않았나?'라는 질문에 가이는 난 겉에서 그 세계를 아름답다 생각한 사람이라 답한다. 약간의 실망이 매기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필자는 이 첫 번째 계획은 잘 된 계획이라 생각했다. 결과를 보고 내린 생각이긴 하지만.


    매기의 두 번째 계획: 남편을 돌려보내자.

    이 계획도 결과적으로는 잘 된 계획이다. 남편 전처가 협력했다. 그리고 남편은 자신을 제대로 아는 이가 전처라는 것을 확인했다. 남편은 전처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행복한 스케이팅을 즐긴다.

    매기는 자신이 난장판을 만들었다 후회했지만, 아이는 말한다. 스펀지로 닦아야 하냐고. (남편)이 차를 팔아 그 돈으로 바이크를 사서 돌아다닐 때, 매기는 꿈꾸던 행복한 일상을 자신의 아이와 함께 보낸다. 이는 첫 번째 계획에서 매기가 꿈꾸던 일상이었다.


    인간 삶의 고난 상황에 밀려 충동적으로 내린 계획

    매기는 스스로의 계획을 추진하다가, 존의 고백에 그만, 그리고 그 상황에서의 들뜸에 자신의 계획을 저버리고 전통적 방식의 결혼이란 것을 한다. 스스로 자신이 없어 포기한 세계의 문을 연다. 결과는 난장판.

    우리는, 힘든 일을 겪을 때, 그 원인을 돌아보게 된다. 인간 삶의 고난은, 자신에게 맞는 길을 걷지 않고 그것에서 일탈했을 때 다가온다. 주위의 말에 밀려 결혼을 해야 된다 스스로를 설득한 후, 대부분의 부부가 겪는 그 희로애락을 겪는다. 사실 돌아보면 자신은 결혼 생활과는 맞지 않는데 말이다. 결혼을 하려면,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할 수 있는 이와 하는 것이 자신에게 맞는 옷인데, 실제 결혼한 상대는 말로 해도 통하지 않는 상대다. 연애할 때 바로잡을 수 있었을 텐데, 그때는, 그의 장점에 괜찮을 거라 스스로를 다독였다.


    열심히 공부했다. 공부가 나에게 맞는 길이었다. 그러나 회사는, 그 정도 성적이면 당연히 지원해야 할 대기업이나 언론사를 택했다. 사실 난 적은 수의 인원이 함께 마음 맞춰 일하는 직장에 어울리고 일도 잘 할 수 있는데 말이다. 지금까지 공부에 들인 투자에 걸맞지 않다고 스스로를 설득했을까?


    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즐겁고, 그 길이 내 옷이었는데, In-Seoul 대학에 들어가 취직이 잘 되는 과를 나와 입사를 하는, 그 길 주위를 얼쩡거리다가, 지금 즐거운 일 거의 없는 일상을 회사에서 보내고 있다. 지금이라도 그림의 길로 가려니, 너무 멀리 벗어나 있어서 엄두도 나지 않는다.

    내 속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아니라, 자신 외 사람들의 말은, 들을 내용이지 따를 내용이 아니다. 언제나 제대로 된 길을 가려면, 자신의 속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길을 감에 있어 있는 힘을 다 내야 한다. 그래야 인생이 살만한 것이 된다.


    부모의 말이니까, 내 절친의 말이니까, 인생 선배의 말이니까, 성공한 사람의 말이니까라며 그 말들 속에서 나의 길을 찾는 것은 고난이 궁금해서 들어가 보려는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권하고 싶지 않다. 그들의 말은 내가 들을 말이다. 내가 따를 말은, 이미 내가 알고 있다.

    난 나를 몰라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친구가 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자신을 알고 있지 않은가? 난 나를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막연할 수는 있다. 그러나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고, 집중할 수 있고, 무언가 만들어 내면 즐거운 그런 일이 내 옷인 것이다.


    그 일이 혹시 쓰레기장에서 쓰레기를 줍는 일이거나, 남의 밑에 들어가 미친 듯이 막노동을 하는 일이면 어떻게라고 상상하는 이는 없겠지? 왜 없냐면,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다 안고 있지도 못할 정보를 접한다. 주의 깊게 봤냐? 머리에 담았냐? 의 차이는 있더라도. 이성이 보진 못했어도, 잠재의식은 본다. 그러니 안심하길 바란다.

    그리고 자신의 플랜을 믿기 위해, 기억해야 할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정신이 없어, 혹은 상황에 밀려 결정을 하려는 자신을 잡아 줄 정신은 항상 뒷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니길 바란다.


    내가 생각한 길은, 현재 내가 가진 실력과 목표 사이의 거리만큼의 시간이 걸린다. 공부에 왕도는 없다지만, 사실 빠른 길은 있다. 그것은 집중력이다. 자신에게 맞는 길을 걸어갈 때 목표에 집중해서 모든 힘을 모어야 한다는 것이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이다.

    앱을 다운받아 항상 그림을 그린다. 실력을 늘려 줄 자료를 항상 찾는다. 더 큰 한 걸음을 걷기 위해 충분히 쉬기도 해야 한다. 그런 것이 나의 플랜이다.


    한편, 이 영화에는 악인은 없다

    상황에 따라 대척점에 서는 관계는 있지만, 악인은 없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나와 대척점에 있는, 혹은 경쟁하는 자를 악으로 보지 말라. 상대가 비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상대를 이기면 그의 전진도 중단되거나 그의 길은 나와 멀어진다. 상대를 악으로 보는 순간, 모든 승부에서 진다.

    존은, 자신이 만족할 소설을 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집안일을 등한시하는 것이 악이라면, 존의 전처가 악이다. 그러나 그녀도 자신이 목표로 하는 것에 매진하는 사람이고, 그녀는 성공했다. 남편을 속여 작전을 짠 매기가 악인인가? 아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 노력한 것이다. 존과 전처가 악으로 보이는 것은, 집안일을 등한시하는 모습들 때문이겠다. 그러나 존과 전처가 살 때, 존이 살림을 했다. 존과 매기가 살 때 매기가 집안을 먹여 살렸다. 매기는 남편이 협력을 하지 않아 힘들게 하니 반품하려 한 것이다. 존은 독선적이고 집안을 돌보지 않는 전처를 피해 매기에게 온 것이다.

    이를 이기적이라 할 것인가?


    부부라는 관점 말고, 가족이라는 관점에서, 이렇게 흔들리고 혼란스러운 부모의 아이들의 관점에서 보면 이 부모들은 악인가? 이 영화에서는 아이들의 플랜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오히려 흘러가는 상황에 맞춰 걸어 다녔다. , 안타까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존과 전처 그리고 매기를 악으로 보지 않는다. 아이들이 스스로 돈을 벌 때까지 줄곧 따라다니며 돌봐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라면 아이 성장의 거름이 되어야지 상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생각한다. 부모가 벌어들이는 경제적 바탕 위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노력하는 자세를 가르쳐야 한다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혼자 힘으로 서야 한다. 넘어지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면서. 아이들 주위에 시도의 문을 여러 개 열어주자. 다칠까 봐 안 돼, 네가 손해 보니 안 돼, 네가 할 일이 아니니 안 돼 등등 온갖 규범 속에 아이들을 놓아두지 말자. 시도하고 주저앉아도 보고 무릎에 피도 나 보게 하는 것이다. 부모가 할 일은, 그런 아이들이 지쳐 있을 때, 따스한 미소와 따스한 밥을 차려 주는 것이고, 힘들다 투정 부리고 울면 넓은 가슴을 내어 주는 것이다. 아이의 손발이 되어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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