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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수정할 수 있다면지난 글 2017. 10. 15. 16:51728x90반응형SMALL
호소다 마모루 / 시간을 달리는 소녀
관심 있는 주제들이 정기적으로 혹은 부정기적으로 갱신되므로, 재방문을 위해 사이트 주소를 즐겨찾기에 추가했다. 즐겨찾기에 Web site를 추가한 행위에서 파생되는 일이 있을까? 즐겨찾기에 Web Site를 추가한 행위를 나중에 후회할 일이 있을까?
사실 온 가족이 한 대의 컴퓨터를 공유하고 있고 사용자별로 파티션을 분리를 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이번에 즐겨찾기에 추가한 Web site는 내 일과 관련된 전문 저널로, 업계 트렌드나 학계 논문이 게재되는 마케팅 전문 Journal Site였다.
아이가 호기심으로 이 즐겨찾기를 클릭했다. 아이는 초교 5학년. 내가 판단하기로 이 저널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나이이다.
이 사이트를 방문한 아이는 내가 주로 보는 섹션이 아니라 다른 곳에 호기심이 끌렸다. 성공사례에 등록된 TV CM 섹션이다. 해외 제작이든, 국내 제작이든, 트래픽 몰이에 성공한 TV CM을 모아 놓은 메뉴이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본 경험이 있는 영상도, 브랜드만 아는 영상도 있을 것이다. TV CM 영상 중에는 초등학생의 관심이나 주목을 끄는 작품도 분명 있을 것이다. 아이는 자신의 즐겨찾기 폴더에 이 TV CM 섹션을 추가했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업데이트 되는 영상들 중 관심이 끌리는 영상을 본다. 물론 아이는 호기심이 종료될 동안만 방문한 것 같다.
어느 날 아이는 TV CM 리스트에서 게임 CM을 봤다. 성인 전용 게임(15세 이상; 성적인 부분은 없음으로 가정)의 CM. 아마도 이 영상을 보게 된 것은 남자 캐릭터가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었을까? 혹은 여자 캐릭터가 마음에 들어서 일 수도 있겠다. 아이는 검색 사이트에서 해당 게임을 검색한 후 방문했다.
이리저리 게임을 살펴보다가 설치를 클릭한다. 우선은 무료로 할 수 있는 부분을 경험한다. 그리고 점점 유료 지불이 필요한 부분에 접근한다. 아이가 내 어깨를 두드린다.
"아빠, 아이템 하나 결제해도 돼?"
평소대로 나는 ”그럼”이라고 답한다. 나는 아이가 하는 행동을 잘못한 일로 만들지 않는다. 그리고 잘못을 할 리가 없다고 전제를 한다. 인간은 선한 존재라 믿고 있고, 12살이 될 때까지 아이의 행동은 나무랄 것이 없었다. 물론 개인으로서, 아이의 행동에 호불호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부모가 싫어한다고 하여 그것을 잘못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그것은 아이가 하는 것을 부모가 싫어하는 것이다. 잘못이란, 남에게 폐를 끼치거나 사회적 규칙을 어기는 행위이다. 그 외의 행동은 모두 아이의 경험이 된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아이는 결재를 하고 게임을 지속한다.
"무슨 게임이야? 재밌어?"
"응, 조금 있다 얘기해"
슬쩍 봐 둔 게임명을 스마트폰으로 검색. '오호, 나이가 맞지 않는데.’ 부모 된 마음에 게임에 대해 상세히 조사한다. 유해한 것을 멀리하도록 이해시키는 것은 부모가 할 교육이다.
게임에 대한 댓글 반응, 언론 주목도, 게임 전문 사이트의 집중 탐구 기사 등 가능한 모든 정보를 살펴본다.
살펴본 바로는 아이가 이 게임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유는 전략 기반보다 캐릭터 힘(기본 능력, 장비)이 높을수록 장애를 물리칠 확률이 높아진다. 다시 말해 심 시티같이 사전에 생각할 기회를 주기보다, 즉각적인 판단, 그리고 승리의 쾌감을 추구하도록 유도될 것 같았다. 나는 아이가 생각을 먼저 하고 그로 인해 좋은 결과를 낳는 경험을 하게 하고 싶다. 이 게임은 적을 물리침에 따른 통렬한 쾌감, 하나의 스테이지를 해결한 만족감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이러한 경험은 게임에 대한 키 조작의 능숙화에 편중될 뿐, 머리를 쓸 기회는 별로 없는 것이 내 조사 결과이다.
"그 게임 어떻게 알게 됐어?"
"TV 광고"
"TV에서 발견?"
"아니, 브라우저 즐겨찾기"
"보여줘"
내가 등록한 마케팅 전문 저널의 성공사례 섹션의 TV CM 리스트가 눈앞에 나타났다.
"왜?"
"그 게임 너무 폭력적이고 단순한 것 같던데. 네가 생각을 깊이 하지 않아도 키 조작만 빠르면 해결할 수 있는 스테이지가 대부분이고.“
"아빠한테만 그런 거 아냐? 뭐 나는 맨날 어려운 것만 해야 하나?"
1차 설득은 실패다.
다시 기회를 잡아 이야기해 볼 생각이다. 하지만 아이의 말처럼, 단순히 즐기기만 하는 엔터테인먼트도 어떤 면에서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까 생각은 하고 있다. 아이는 평소에 친구들과 어울려 벡터 이미지로 만들어진 재료를 사용해 무언가 만들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게임을 즐겨 한다. 내 판단에서는 좋은 게임이다. 아이의 경험이라는 측면에서는, 이런 게임과 저런 게임을 모두 경험해 보는 것이 내 지론에 맞는다. 앞으로 설득의 기회를 잡으려고 하는 것은 순수하게 개인으로서의 내 호불호이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다. 하지만 이런 계기를 만든 것은 나의 즐겨 찾기였다. 다르게 저장해 놓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면밀하게 사이트 내용을 살펴봤다면. 한 대를 나누어 쓰는, 아이와 공유하는 컴퓨터이므로 좀 더 세밀한 접근을 할 필요가 있었다. 이것은 내 반성이다.
설마 보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반성을 하지만 후회도 밀려든다. 만일 나에게 단 한 번 과거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난 즐겨찾기를 추가하던 순간으로 날아가 추가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재방문 경로를 만들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물론 다른 계기로 아이가 이런 종류의 게임에 닿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명백하게 드러난 것은, 시작점이 내 즐겨 찾기라는 것이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내가 겪은 일상이 주는, 개인행동이 가져오는 파급 효과를 보여준다.
만일 그 시간에 내가 자전거를 내달리지만 않았어도, 만일 내가 자전거를 그 아이들에게 빌려주지만 않았어도. 되돌릴 수 없는 지나버린 시간.
주인공의 마녀 이모가 말했다.
“네가 얻은 대신 누군가는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주인공의 과도한 과거 되돌리기는, 미래에서 온 아이가 자신의 현재로 돌아가지 못함에 영향을 미친다. 언제나 바쁘게 과거로 돌아가야 했다. 모든 실수를 다 없애려 했다. 의도는 선했다. 하지만 구멍을 막은 대신, 증가한 압력으로 다른 곳에 구멍이 생기는 꼴이었다.
부럽긴 했다. 만일 나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어떻게 활용할까?
변경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가능한 범위에서 예상하고 싶다. 이해관계자와 사건 사이의 함수를 면밀히 생각하고 싶다. 가능한 추가적인, 혹은 누락된 사건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싶다.
이러한 생각의 과정을, 전략 기획에서는 시나리오 플래닝이라 한다. 가능한, 유효한 데이터와 사실을 수집하고, 가려는 목표를 정하고, 목표에 도달할 시나리오를 수립하는 과정이다. 내가 이렇게 행동했을 때 영향을 받는 요소를 식별하고, 그 요소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그 요소들의 움직임은 어떤 영향을 연쇄적으로 발생시킬 지를 내 역량 하에서 생각하고 싶다.
내 일이 끝나지 않고, 파일명 뒤에 _1, _2, ..., _15, _16 이렇게 변경 버전명이 늘어나는 이유는, 잘못된 부분을 고친다는 생각뿐의여서이다. 그것을 고쳤을 때 영향받는 요소는 무엇인지, 바쁘다는 핑계로, 생각하지 않아서이다. 이런 내가 바뀌길 바란다.
과거에는 고치고 싶은 요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모든 요소들은 가시 범위 밖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부분을 개선한다고 과거가 모두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어두운 곳에 불을 켜서 모두 밝게 하니까, 내가 쉴 곳이 사라진다.
Photo by Jason Won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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