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두 남자의 이야기

2018. 2. 18. 17:02지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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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 자리 한 구석에 신기하게도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혼자 술을 따라 마시는 사람이 있다.


잔이 비면 술을 채우고 술이 차면 잔을 비운다. 숨은 쉬고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그는 술로 호흡을 하는 듯했다.


나 역시 상대 없이 회식에 앉아 있던 터라 그의 앞으로 갔다. 당연히 이런 분위기 안에는 앉아 있을 사람은 없다. 술로 호흡하는 와중에도 시야는 넓은지 앞에 앉는 나를 흘깃 본다.


‘뭐해?’


이 한 마디가 그의 입을 연 방아쇠가 됐다. 그리고 1시간 동안 그는 술로 하던 호흡을 멈추고 말로 호흡을 대신했다. 전문 분야에서 사적 과거까지, 회사 분위기에서 들어가기 싫은, 혼자 사는 집에 이르기까지. 그는 혼자 있던 만큼 안에 고여 있던 말도 많았나 보다. 


전문 분야에서 사적 과거까지, 회사 분위기에서 들어가기 싫은 집에 이르기까지. 이 모두가 그가 혼자 있던 시간이다.


나는 듣고 있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가 지겨워질 때마다 술을 한 잔씩 비웠다, 단숨에.


그렇게 마시니까 소주 한 병은 물이었다. 듣다 지쳐서 목이 말르면 한 잔씩.


그렇게 한 시간을 마시니 혼자 2병을 마셨다. 15(잔) 나누기 60분은? 


누군가의 외로움은 이렇게 건조한 공기다. 다행히 알코올이 있어서 그가 입을 열었다. 좀 더 명확히 말하면


알코올로 입이 노골노골하게 녹여 놓은 상황에 내가 앞에 앉아 오래도록 입을 붙여 놓은 접착제가 녹아내린 것이다.


그도 인사 불성이었다. 잔뜩 마신 뒤 수다로 쏟아 내면 절대 술이 깨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오히려 알코올에 취한 몸에 말을 뱉어 내는 행위에 정신이 취해 완전히 인사 불성이 된다. 나는 마시는 시늉만 하다가 1시간 만에 혼자 소주 2 병을 마셔 몸이 잔뜩 취한 상태에서, 담배처럼 정신을 몽롱하게 하는 그의 말에 취해서 그와 마찬가지로 인사불성이 됐다.


여기서 사실을 말하면, 그의 앞에 앉은 나도 혼자 대중 속에 있었던 거다. 그런데 구석에 비어 있는 요철을 발견한 것이다. 한 사람은 떠들고 한 사람은 마시고. 이런 모습이 각자가 가진 요철이 딱 들어맞았다는 것이다. 호응도 옹호도 응원도 없었고, 듣는지 확인하지도 않았다. 떠들고 마시고가 박자가 맞은 거였다.


회식은 파했다. 회식 시간 내내 두 사람을 방해하던 이는 없었다. 덕분이 그는 원 없이 이야기했고, 나는 원 없이 술을 마셨다.


그리고 가게 앞에서 각자의 집으로 각자 걸어갔다. 다음에도 내 앞에서 떠들 거라고, 다음에도 니 앞에서 마실 거라고 약속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각자의 집으로 향하는 모습까지, 궁합의 끝이었다.


*이미지는 여기서: Photo by Heng Film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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