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닉의 냄새, 뉴욕의 건물과 도로

2018. 5. 11. 17:00지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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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이국적이란 말인가? 왜 이 단어를 사용했나? 에티오피아 국제공항에 커피를 파는 자동판매기가 있다. 이 자동판매기는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커피로 단돈 500원에 195ml 종이컵의 80%를 채운다. 국내에서 보지 못한, 혹은 앞으로도 볼 수 없을지도 모를 모습이니 이국적이지 않은가? 뉴욕의 식품 판매점(grocery store)에서 판매하는 식빵은, 2005년 6월 현재, 국내 어느 전문 빵 판매점보다 맛있다. 주식과 부식의 차이일 수도 있다. 뉴욕의 라테와 일본 도쿄의 라테는 우유 맛보다 커피 맛이 더 진하게 난다. 뉴욕에서 마신 콜라의 맛도 탄산보다 원액이 진하게 느껴진다. 이국적이지 않은가? 어쩌면 나에게 ‘이국적’이란 단어는 국내에서 느낀 결핍에 대한 반향(反響) 인지도 모른다. 원한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이 충족되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난 에티오피아에 가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런 자동판매기가 있는지 여부도 알지 못한다. 인터넷 검색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뉴욕에 있다. 2005년 6월 혹은 7월의 어느 날이다. 전기세가 고정 집세에 포함되어 있어 밤새도록 에어컨디셔너를 켜고 자고, 목욕탕에 물을 가득 채우고 입욕제를 넣고 앉아 있다.  에어컨은 구형이라 틀면 비명 같은 소리를 낸다. 허나 공짜라고 이해되면서 비명은 '나 켜졌어요~’ 하는 신호로 들렸다. 반바지와 반팔 티셔츠를 입고 샌들을 신고 뉴욕의 동서남북을 끝에서 끝까지 걷고 있다. 걷는 이유는 잠시 멈춰 서서 보고 싶기 때문이다.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발이 코끼리만큼 부어 오른 그 순간 생각해 낸 목표는 ‘뉴욕’을 ‘내 시선’으로 느낀다 였다. 물론 백팩에는 고르고 고른 뉴욕 가이드가 있다. 인터넷 기사 인쇄물도 두툼하다. 하지만 그것은 ‘무엇이 어디에 있다’는 정보이지, 내가 경험하여 느낀 사실은 아니다. A 레스토랑이 괜찮다는 내용은 저자의 의견이지 내가 느낀 맛이 아니다. 길잡이는 길잡이일 뿐이다. 


2005년 6월 전, 누군가 내게 ‘뉴욕이란 어떤 모습이야?’라고 물었다면, ‘세계의 경제 중심지답게 고층 빌딩으로 둘러 쌓인 진보된 도시!’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 가보는 뉴욕에서 나는 고층 빌딩을 외면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단연 뉴욕의 아이콘이다. 그러나 패스(pass)!. 크라이슬러 빌딩, 패스! 모습은 이체롭고 역사도 오래된 명소여서 수많은 국내외 사람들이 찾는다지만, 나의 눈엔 담기지 않는다. 내 시선을 끌고 걷던 걸음을 멈춘 것은 뉴욕의 오래된 건물들이다. 오히려 플랫 아이언 빌딩이 내 시선을 잡는다. 평균 10층 정도의 주택 건물들. 높고 낮음이 기준은 아니다.  




붉은 벽돌, 혹은 ‘베이지 색이 아닐까’ 싶은 벽돌이 건물 외관으로 보인다. 미끈한 시멘트 벽이 아니라 거친 벽돌의 요철과 그 위에 칠한 페인트의 모습이 이국적이다. 뉴욕을 경제 중심과 거주지로 나누었을 때 내 시선을 끈 것은 거주지의 건물이다. 벽돌이 아니고 석판으로 된 외관도 보인다. 건물에 따라서는 배수구에 악마의 형상이 붙어 있거나 괴물이거나 혹은 천사의 조각이 장식되어 있다. 층을 구분하는 라인이 도출되어 있다. 그라피티가 그려진 벽도 있지만 이런 모습은 익숙하니 이정표 정도로 여겼다. 그보다 건물 자체의 ‘다름’이 내 시선을 끈다. 검색 서비스에서 ‘뉴욕’, ‘건물’로 검색하면 나타나는 붉은 혹은 베이지 색 건물들. 이 건물들이 내게 이국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 이국적임을 더한 것은 간혹 보이는 옥상의 목재 수조다. 서부 영화에서 본 원뿔형 지붕에 둥근 몸체를 지닌 고전적 수조가 아직도 뉴욕의 빌딩 위에는 그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국적이다. 아마도 ‘미국’과 ‘뉴욕’이라는, 내 기억 속에 박혀 있는 이미지는 ‘선진’이라는 이미지여서 인지도 모른다. 세계 1위의 경제 대국인 미국이 30년도 넘을 것 같은 건물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나에겐 이국적이었다.





우리가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신청 설치한 인터넷은 CATV와 패키징 되어 있었다. 케이블 TV 신청 사무소에서 신청 설치할 수 있는데, 당시 국내에도 동일한 모델이 서비스되고 있었다. 아마도 우리 거주지 인근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갑자기 인터넷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런 이유다. 


국내의 경우에도 주택의 사용연수가 10년이든 신축이든 인터넷은 설치된다. 이는 뉴욕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뉴욕의 주택을 보면서 내가 이국적이라고 한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어쩌면 분야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 일상을 감싸고 있는 환경에 국한해서 봤을 때 국내와 뉴욕(대표 명사로 사용)의 차이점은 동일성(identity)의 유지 여부가 아닐까 한다. 먼저 국내 이야기를 해보자. 내전 후 급속도로 발전한 우리나라의 주택은 크게 단독과 아파트로 양분되었다. 이 중 단독은 기와식 한옥에서 양옥으로 변경되어 왔다. 그런 것이 다세대로 전환된 경우가 많아졌다. 한옥에서 양옥으로의 변경은 발전된 기술 도입에 따라 불편함을 개선하려는 노력이었다. 이제 다시 뉴욕으로 넘어가자. 수많은 이민자로 시작된 뉴욕은 나무로 만든 집에서 돌로 만든 집으로 전환됐다. 이것이 기술 발달에 따라 복수층의 건물로 발전을 했다. 이 역시 기존 주택을 기술 발전에 맞춰 개선한 결과일 것이다. 우리는 흙과 나무와 돌과 기와로 된 한옥이 현재의 다세대까지 전환됐다. 뉴욕은 나무와 돌로 지은 집이 다층의 석재 건물로 변화했다. 서부 황금시대의 건물도 1층은 상가이고 이층부터 주거지였다. 그런 전통이 이어지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들면서 이국적이라 판단했다. 


도시에 사람이 볼리면서 국내나 뉴욕이나 동일 면적에 수용 가능한 인원을 늘려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발달한 국내와 뉴욕의 주택에 인터넷이 가설된다. 개인용 컴퓨터가 놓이고 프린터 등 OA 기기들이 설치된다. 끊임없이 개선되고 있는 현대의 인테리어는 일상의 동선에 맞게 효율성을 추구하며 국내에서도 뉴욕에서도 발달했다. 이제 뉴욕의 어퍼 이스트와 한국의 한남동을 살펴보자. 뉴욕의 어퍼 이스트는 부촌이다. 한국의 한남동도 부촌이다. 뉴욕의 부촌은 몇십 년 된 건물의 외관은 유지되고 인테리어는 현대적으로 변경됐다. 한국의 부촌은 외관도 인테리어도 현대적으로 변경됐다. 이렇게 이해하고 있는 내게 뉴욕의 건물은 '자신의 동일성을 유지한 채 첨단 기술을 도구로서 사용한 도시’였고, 서울의 건물은 '발전 및 발달에 따라 동일성마저 변경한 도시’였다. 이런 이해가 내게 뉴욕의 건물을 이국적이라 보게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변경할 필요가 없는 부분은 지속적으로 유지 보수하고, 꼭 필요한 변경만 적용한 모습이라고 생각해서 뉴욕의 건물을 이국적이라고 판단했다. 우리는 간혹 ‘대대적인 웹 사이트 리뉴얼 이벤트’를 만난다. 기존 사용자로서 이전 사이트에서 익숙하게 다니던 동선이 사라진 모습에 다시 웹 사이트의 동선을 익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새 술은 새 포대에 담으라’라는 말을 우리의 고객들은 잊지 않고 있다. Apple사의 iPhone을 4부터 지금까지 사용한(5, 7 단위로 업그레이드 해왔다) 나는 이전 모델에서 익숙해진 동선을 새롭게 익힐 필요 없이 기계적으로 움직여도 새 모델의 장점을 활용할 수 있다. 그래서 난 소위 '애플 빠'가 됐다. 디지털 마케팅 매체를 기획하고 구축 프로젝트를 관리하던 나로서는 이러한 리뉴얼에 목말라 있었나 보다. 그러나 당시 나에게는 ‘기존 고객들에게 익숙한 동선은 그대로 두고 기능적으로만 개선하자’는 주장의 근거를 제대로 대지 못했다. 뉴욕의 건물주와 건축사들이 협력하지 않았다면 몇십 년된 건물의 외관을 유지 보수하면서 인테리어를 변화된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개선하는 일련의 작업들을 이렇게 차곡차곡 쌓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나만의 생각이 뉴욕의 고풍스러운 주택가 건물을 ‘동일성을 유지하고 신 기술을 도구로서만 사용한 건물'이라 정의하게 했는지 모른다. 뉴욕의 주택가를 이국적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예상치 못한 이국적인 모습을 골목에서도 찾았다. 벽돌과 시멘트로 이루어졌고, 오랜 세월만큼 눌린 듯 움푹 들어간 골목길이 이국적이었다. 그런 모습의 골목길을 처음 만난 장소는, 워싱턴 스퀘어 파크를 가던 중 뉴욕 주립 대학교 건물과 건물 사이에 난 골목에서였다. 비가 왔고, 보도가 젖어 있었다. 눈여겨보지 않아도 물이 고인 곳이 있어서 빠지지 않기 위해 눈을 닿게 했는데, 그것이 첫 만남이었다. ‘아, 이것이 뉴욕의 예전 길의 모습이구나’ 했다. 오래된 보도를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다. 눌린 듯 움푹 꺼진 곳이 많아 불편할 텐데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아마도 저 움푹 꺼진 자리는 건축의 실수가 아니라 시간의 무게 때문일 것이다. 난 이렇게 판단했다.


뉴욕 센트럴 파크 앞 Apple Experience Store는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그것 같이 유리로 된 건물이 지상으로 나 있고 실제 store는 지하에 위치해 있다. 소호의 Apple Experience Store는 예전 우체국 건물을 그대로 두고 내부를 현대적으로 꾸몄다. 이른바 Localization(현지화)의 노력일 것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외신을 통해 만난 Apple Experience Store의 모습은 단연 센트럴 파크 앞에 위치한 store이다. 새 것을 좋아하는 우리의 성향 상 당연히 유리로 된 입구를 가진 store가 주목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소호의 Store가 이국적이었다. 굳이 우체국을 변경하지 않고 오히려 이용하는 것이 마케팅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새로운 것, 기존의 것을 훌륭히 개선한 것 모두 마케팅 주제로는 손색이 없다. 그런 이유일 테지만, 나에게는 이국적인 건물이었다.


우리는 지독하고 빠른 시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혹은 이를 선도하기 위해 ‘변화 = 성공의 방법’이라는 말을 지겹도록 듣는다. 내가 뉴욕에서 주목한 것은 변화의 ‘방법’이다. 뉴욕에서 거주했던 이스트 빌리지의 스튜디오는 건물 6층에 위치하고 있다. 10층이 안 되는 건물이었다. 우리는 뉴욕에 도착하고 짐을 찾아 숙소 입구를 들어서서는 망연자실했다. 32Kg의 이민 가방 하나와 눌러 담은 백팩 2개가 우리 짐이었다. 줄이고 줄여서 가져왔는데도 그렇다. 이민 가방에는 옷이 주로 들었다. 백팩에서 가장 무거운 짐은 노트북이다. 뉴욕에서도 connected life를 이어가기 위해서였다. 이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다. 계단 한 단은 20개 정도의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경사는 그냥 봐도 가파르다. 허리가 내려앉고 척추가 휘며 날개뼈가 납작해지는 경험을 하며 겨우 6층에 도착했다. 총 6x20=120개 계단을 32Kg 이민 가방을 등에 얹고 올라왔다. 이국적이다. 불편한 이국 적임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뉴요커들의 생활에서는 불편한 점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32평 아파트에서 이사 가기 위해 부르는 이사짐 센터의 박스 트럭 대수는 총 몇 대인가? 스튜디오에는 냉장고와 가스레인지와 에이컨과 붙박이 옷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놓고 간 책상과 의자, 5칸짜리 입식 책꽂이가 있었다. 뉴요커들은 이사를 할 때 아마도 이민 가방 정도가 가장 큰 짐이 아닐까? 책이 많은 경우 등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그들의 가벼운 이사 문화와 가벼운 일상에는 계단이 불편하지 않은 시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역시 도착과 출발 외에는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걷고 뛰는데 계단 120개는 훌륭한 운동거리이다. 


일상을 가볍게 하는 방법으로 최근 회자되는 미니멀 라이프. 자신이 생활하는데 부족함이 없을 정도만 지니고 살자는 생각. 미니멀 라이프의 실현은, 과도한 변화 방법에서 벗어나는 것도 한 방편이 될 것이다. 있던 것 중 유용한 것은 그대로 두고 필수적인 부분만 변경한다면 변화의 과정도 부담도 가벼워지지 않을까? 언젠가는 익숙한 부분도 필요에 따라 변경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지 분위기에 따라 기분에 따라, 혹은 트렌드에 따라 변경되는 것은 아니다.


*숙소 옆에 있던 초밥 및 한식 레스토랑 '전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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