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닿는 태양의 빛과 열기의 양은 일정하지 않다. 모든 생물이 항상 동일한 양을 섭취하지 않는다. 모든 생물의 배설이 항상 일정하지 않다. 모든 생물이 낳는 개체 수와, 수명을 다하여 소멸하는 개체 수 역시 일정하지 않다. 이런 일관되지 않은 결과들이 변화를 만든다.
언제나 A 다음에 B가 일어나야 안심하는 사람들에게는 짜증나는 일일 것이다. 왜 짜증이 나냐 하면, A 다음에 B가 일어나야 준비한 대로, 물 흐르듯 처리하고 결과도 괜찮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맞이한다. 아니, 예기치 않은 상황을 맞이한다. 세상이 왜 이러냐고 한탄을 하고, 그것이 그의 불만이 된다. 그들은 세상이 그렇다는 것도 알고, 이미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일관되지 않은 상황 발생의 경험 말이다.
그들도 매 끼니 다른 메뉴를 먹는다. 언제나 일관되고 동일한 식사를 하고, 동일한 운동량을 유지해야 편할 텐데 끼니별 메뉴가 다르다. 물론 동일한 분도 봤다. 부럽지는 않았다.
아침엔 시리얼, 점심에 밥, 저녁엔 국수. 혹은 점심에 국수, 저녁에 밥일 수 있다. 저녁에 삼겹살과 목살을 소주와 함께 먹느라 탄수화물을 한 끼 건너뛰기도 할 것이다. A 다음에 B가 되어야 한다면, 그들의 메뉴는 동일해야 할 텐데. 물론 자연이라는 시스템의 원동력이 선택의 다양성에 의한 변화만은 아니다. 지난 해 장마는 없었다. 올해 장마는 지난 해 내리지 못한 강수량까지 담당하는 것 같다. 장마 강수량의 들쑥날쑥 함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것이 '자연'이지 않을까? 어떤 '존재'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시스템, 원인과 결과의 순환과 상호작용. 때때로 '자연'을 존재인 것처럼 서술한 서사를 만난다. 세상의 모든 규칙을 제정해 펼쳐내는 신과 같은 존재. 단지 묘사일 뿐이라면 서사를 읽는 동안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예 주체적 주어로 설정해 의지를 발한다고 서술한 서사는 그럴 때마다 인정하고 싶지 않다. '자연'이라는 존재가 마치 신처럼 등장 하는 글을 읽으면 언제나 이 이야기의 첫 문단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존재'로서의 자연 서사를 부정하고 읽기를 멈춘다.
지구의 '자연'이라는 시스템의 시작은 태양이 아닐까? 일조량이 지역에 따라 시기에 따라 달라 기온 차이를 만들고 이로 인해 대기가 흐른다. 수온의 차이와 중력에 의해 해류가 흐른다.
자연이란 시스템은, 지구 상 개체들의 행동이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에 의해서도 움직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자연은 공간적이고, 집단적이며, 인과적 속성을 가진 체계라고 생각 된다. 공간과 상황이 범위를 설정 하고 그 안에 모여 있는 개체들이 상황과 각 개체의 행동에 서로 영향을 받는다. 걸어가다가 소나기를 만나 건물 처마에 잠시 서 있던 바람에, 그녀와 만날 시간에 늦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가 출근하는 내게 "다녀오세요"라고 귀엽게 인사해 기분 좋은 아침을 시작했지만, 철야 중 팀 공동 작업 보고서를 날린 팀원 덕분에 분노가 치솟고 상무님께 왕창 깨져 억울하고 서러운 퇴근을 맞기도 한다.
명예퇴직은 내게 정해진 운명이 아니라, 인사과에서 작성한 대상자 명단에 내가 들어가 있어서다. 그 명단 작성은 상위자의 지시에 의한 것이다. 상위자는 기업 상황을 살펴보면서 명예퇴직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들었을 것이다. 신제품이 출시하기 전인데 지금 준비 중인데 현행 제품의 매출 하락 속도가 빨라지면서 기업 상황이 나빠졌다. 이렇게 상황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지구의 자연계는 현재 이상 징후를 겪고 있다. 물론 여기서의 '이상'은 '잘못된 현상'이라기보다, 지난 시간들과 다르다는 의미일 것이다. 필자가 발견(?) 혹은 알게 된 변화는 지역별 특산물의 산지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에 잡히던 어종이 더 위쪽에서 잡힌다거나, 수확하던 농작물을 더 아래 지역으로 옮겨야 한다거나 하는 일이다. 매체 기사를 검색해 보면 지난 기사 중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는 북극의 한파가 내려와 무척 추운 겨울을 보냈다. 북극의 기온이 높아져 북극의 한파가 아래로 내려왔는데, 이것이 해소되거나 이동되지 않고 정체 됐기 때문이라는 뉴스를 시청했다. 북극의 기온은 왜 높아졌을 까? 지구 온난화, 이산화탄소의 증가 등이 그 원인일 것이다. 현행 자연계의 이상 징후의 원인은, 자연 구성 요소들의 행동이 과하거나 모자란 것이 근본적인 원인일 것이다.
과거와 일관된 계절의 흐름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당시와 동일한 환경이 유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산업혁명으로 가속화된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예전과 다르고 과하여 지구 기온에 변화를 주었다. 이번이 지구 역사상 처음 겪는 이상 징후는 아니라는 기사도 읽은 적이 있다. 아마도 공룡 시대라고 언급 됐을 것이다. 현재 지구 종보다 먹는 양이 많았으니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역시 더 많을 것이다. 현재도 축산 생물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매우 큰 비중을 이룬다는 기사를 읽은 적 있다.
자연이라는 존재가 법칙과 질서를 만들고, 구성원이 그 길을 따라 걷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간혹 '신'에 대해 이런 대사 혹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사랑의 신이라면서, 왜 세상에 고통과 고난이 존재하게 했는가?' 아마도 우리가 겪는 고통과 고난은, 어떤 존재가 작성한 시나리오는 아닐 것이다. 무언가 지나치게 과하거나 지나치게 모자라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에 느낀 어떤 분야의 결핍이 전에 없이 크게 느껴, 더 많은 양을 선택 소비를 하자, 동일한 결핍을 느낀 사람에게 갈 양이 줄어들었다. 아~ 고난이다. 작년까지의 소비량에 비춰 생산을 했는데, 올해는 결핍을 지난해보다 더 많이 느낀 사람이 많아졌나 보다. 모자란 제품을 채우느라 2개월 간 야근을 했다. 아~ 고통이다.
자연은 없었다. 자연은 진행되는 체계이며, 다양한 원인에 따라 거칠게도 느리게도 움직인다. 그로 인해 누군가는 제도권에 있다가 비 제도권으로 벗어났고, 누군가는 비 제도권에서 고생하다 제도권에 진입했다. 거지가 부자가 되면 살아갈 수 있지만, 부자가 거지가 되면 숨 쉬는 것도 고통스럽다는 말이 생각난다. 또한 부자가 되더라도 마음의 고난이 끊이지 않는 경우도 있고, 거지가 되어 막힌 마음이 뻥 뚫리기도 한다. 전체적인 측면에서, 자연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그 원인을 알게 됐다고 생각 한다. 그런데 나에게 닥쳐온 고난 혹은 고통의 원인은 잘 파악되지 않는다. 이것은 정보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이라는 큰 범위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의 조사와 사고가 존재하지만, 나에게 일어난 사건에 대한 정보는 희박하다.
성공을 하지 못하더라도 실패하지 않는 선택을 하여 고난이나 고통을 겪지 않으려면 두 가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지(智; 지혜)와 지(知; 앎).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해서 도서관으로 뛰어갈 필요는 없다. 어쩌면 도서관은 두 번째로 가야 할 장소일 것이다.
첫 번째 파악해야 할 것은, '내가 영향을 주는 대상'과 '내게 영향을 주는 대상'이다. 그 대상은 사람일 수도, 사물일 수도 있다. 어제까지 잘 돌아가던 노트북이 오늘은 버벅 버벅. 그래서 마감 시간을 지키지 못했다. 협업하던 사람이 갑자기 병가를 내어 오늘은 야근에 철야다. 어제 내린 지시를 오늘 내가 변경했다. 물론 타당한 이유가 있었지만, 손이 빠른 팀원의 얼굴을 굳어지더니 흙빛이 됐다. 거의 다 했었나 보다. 지시 변경이 타당한 명문은 있었고 구성원 전체가 수긍했지만, 함께 수행하는 사람들의 진척 상황을 모르고 변경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 원인이다. 물론 진척 상황을 알더라도 변경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 A라는 결과에 도달하는 길이나 방법은 한 가지가 아니다. '이 바쁜 세상에 뭘 방법을 바꾸고 다른 길로 가!' 싶겠지만 이는 변경에 대한 짜증과 귀찮음일 뿐이다. 전보다 더 간편하고 쉬운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짜증이 앞서면 더 안 보이니 워워~ 진정하자.
지구 온난화든, 이상 기후든, 이런 것보다 자기 일에 더 집중하는 사람들에게는 위 문단이 가장 살에 와 닿는 '자연'일 것이다.
위 이야기를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사전에 정해진 '길'은 없다. 다만 내가 선택하는 '길'이 있을 뿐이다. 둘째, 나는 만족하지만 그 결정으로 인해 만족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즐겁지 않을 이들이 존재할 수 있다. 셋째, 모든 결과가 나의 선택과 행동에 따른 것이라면, 나는 더 나은 결과를 낼 선택과 행동을 고르는 노력을 할 수 있다.
모든 고난에는 빠져나갈 길이 있다고 했나? 단지 내가 그 길을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나? 이제야 동의하게 됐다. 전보다 바빠질 수 있겠지만 익숙하면 쉬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