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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갈등이 만들어 낸 존재
    지난 글 2017. 11. 12.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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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트릭 네스/몬스터 콜스


    우리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망설임이 있다. 선택의 망설임.


    그 주제가 무엇이든, 어느 정도 크기의 망설임이든 망설임은 갈등을 낳는다. 선택의 갈등.


    우리는 우리가 속한 세계에서 이분법적 판단을 자주 접한다. OK or No. 이쪽 혹은 저쪽. 그러나 우리 마음속의 갈등은 결코 이분법적이지 않다. 아니 선택 항목은 2 가지 이상이다. ‘어떻게 하지?’


    ‘이렇게 하면 저렇게 될 것이다’라는 생각이 2 가지 이상 떠오르게 되고 우리는 망설이게 된다. 선택이 늦어질수록 망설임은 갈등이 되고, 망설이기 시작할 때 머리 속에 있던 선택 항목의 수는 수많은 가지를 차례로 만들어낸다. 


    이러한 망설임에서 갈등으로의 전환은 내부에서 토론을 야기한다. 토론 주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 토론의 참여자는 바로 나 자신인데, 나 자신이 다양한 입장을 가진 주체로 마음 속 토론 테이블을 채운다. 때로는 2명, 때로는 4명, 때로는 참여자 인원수를 샐 만큼의 여유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패널들이 토론에 참여한다. 그리고 각자의 주장을 갑론을박을 한다. 이 토론에는 진행을 정리할 사회자도 없다. 각자의 의견만이 머릿속을 채운다. 그 뒤를 이어 두통이 생겨난다.


    우리는 빠른 시간에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본 경험이 있다. 그들은 언제나 신속한 선택을 하고, 선택의 근거에 대한 우리의 물음에 명확한 근거를 논리적으로 이야기한다. 마치 그들의 머릿속에는 망설임도, 그로 인한 갈등도 없다는 듯이.


    그러나 그 반대편에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이들도 자신이 부러워하는 빠른 선택을 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단지 부러움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부러워하는 대상만큼 명확한 선택을 했다는 기억을 굳이 금방 꺼낼 수 있는, 자신이 갈등을 이기지 못한다 스스로를 비하할 때 꺼낼 수 있을 만큼 가까이 기억을 두지 않는다. 그 기억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자존감을 되살릴 열쇠가 되기도 하는데 말이다.


    우리는 귀신 목격담을 들은 경험이 있다. 누가 어디에 가서 귀신을 보았다는 말들. 때로는 카메라로 찍은 사진에 귀신이 찍혔다는 말도 듣는다. 종교의 지붕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귀신과 마찬가지인 존재들의 실존을 믿는다. 그리고 그 초월적 존재들의 신화를 경전에 담아 읽고 전한다.


    왜 갑자기 귀신 이야기인가? 


    우리 마음속에 갈등이 심화되면 갈등은 셀 수 없이 많은 가지를 접고 단 두 갈래만 남는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라는, 선택의 차원에서 본다면 이분법적 상황이지만, 이 두 갈래는 대척점에 서 있지 않은 경우도 많으니 이분법적이라 최종 분류하지는 않겠다.


    이렇게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우리는 어떤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갈등을 종결할 히어로 같은 존재를 자각하게 된다. 아니, 자각한다 믿게 된다. 그 존재는 갈등이 심화되어 결국 최종 선택항목이 남았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을 하지 못할 때 우리의 인지 내에 들어온다. 그들은 우리를 자극한다.


    우리가 망설이는 동안, 그것이 갈등으로 화하는 동안, 그 무수한 가지들이 정리되고 최종 갈등 항목들만 남은 순간, 우리가 잊고 상정하지 못한 것을 깨닫게 한다. ‘네가 진정 원하는 것이 뭐야?’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 존재는 우리를 윽박지르고, 달래고, 쉬지 못하게 하며 끊임없이 같은 질문을 던진다. ‘네가 진정 원하는 것이 뭐야?’


    갈등을 잠재우지 못해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 나에게 그 존재는 지치지도 않고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네가 진정으로 원하게는 것이 뭐야?’


    우리는 그 존재와 싸운다. 왜 싸우는가? 그의 질문은 반복적이지만 우리가 선택을 하는데 가장 필요한 질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존재에게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 그 거부감은 그 존재가 망설임에서 갈등으로, 그리고 무수히 많은 갈등 항목들이 최종으로 정리될 때까지 내가 고생한 것을 모르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생겨난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에 대한 강한 거부감은 갈등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내 주의를 환기시켜주는 데도 말이다.


    결국 그 누구도 그 존재를 무시하고 자신의 갈등 세계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그 존재와 싸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이 왜 이렇게 갈등의 늪에 빠져 있는 지를 너를 모른다고 소리를 친다. 그러다가, 그렇게 갈등의 늪에서 부지불식 중 빠져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그 존재의 질문이 명확하게 들린다.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뭐야?’


    우리는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을 잊고 산다. 그 책임을 나 아닌 다른 이에게 전가하며 자신을 스스로 피해자라 인식하고는 자신의 현재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면죄부에 안심하며 남이 도발하는 어려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 우리를 눈 뜨게 하는 것이 그 존재이다. 몬스터 콜스의 몬스터는 바로 그 존재이다. 그는 전지전능하지 않다. 모든 갈등은 내 스스로 선택하여 해결해야 한다. 갈등의 늪에 빠졌을 때 선택의 기준을 잃게 되고 그로 인해 나의 온 몸은 갈등의 늪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된다.


    이 존재는 귀신일까? 그런 종류일까? 아니다. 그 존재는 우리의 뇌가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그리고 선택의 기준으로 다가가게 하기 위해 만들어낸 보조 수단일 뿐이다. 물론 이 말은 한 번도 문제 제기가 된 적이 없고, 증명이 된 적도 없다. 그러나 이 존재는 우리의 뇌가 갈등을 생성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성한 선택의 가이드이다.


    그리고 우리가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잘 선택하는 분야가 있고 잘 선택하지 못하는 분야가 있다. 그 반대편에 서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단지 반대편 사람들은 그가 빠른 결정을 내리는 순간만을 목격해서 그들이 자신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착각할 뿐이다.


    Photo by Ian Espinos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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