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떠오르면 잠시 멈춘다

2018. 3. 30. 16:15지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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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년의 삶을 사는 동안 보고, 듣고, 맛보고, 만져 보고, 냄새 맡으며 쌓인 경험이 지금 내가 경험하는 것과 자석의 N과 S가 되어 서로 끌어당긴다. N과 S가 닿으면 생각이 시작된다.


야마오카 소하치의 ‘오다 노부나가’ 3권 69쪽


“드디어 우리 오와리의 운명도 앞으로 사오 일 이면 결정이 나겠군.”


왜 믿질 못하지? 노부나가가 ‘오와리의 멍청이’라고 불리며 했던 기행들이 오와리의 위기 때마다 이를 해결하는 밑바탕이 되었음을 중신들이 여러 번 확인했다. 그러나 다시 위기가 닥치고 노부나가의 기행이 시작되자 중신들은 이런 판단을 하고 있다. 통찰이 없어도 중신이 될 수 있었나? 나중에 일이 해결된 후 이번 기행도 해결의 기반이 됐다는 것을 확인해야 “역시!” 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텐가? 어떻게? 대장 눈에 들어서? 시대도 시대니 부모의 직책을 이어받아서? 이런 일은 천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래.


야마오카 소하치의 ‘오다 노부나가’ 3권 70쪽


조리사가 갓 잡아온 은어를 굽는 냄새가 은은히 풍기고, 뜸이 들기 시작하는 밥 냄새가 구수하게 주방을 가득 메웠다.


최근엔 가스레인지 혹은 인버터 하나로 모든 가열을 다 처리한다. 가스레인지가 도시가스(메탄) 기반 1,200~1,900도, 인덕션은 이것의 3~4배로 추정(자기장 유도 간접 가열 방식이라 정확한 측정은 어렵다) 되니 화력은 넘친다. 그러나 숯불에 구운 고기와 가스레인지에 구운 고기의 맛이 다른 이유는 숯불은 은은히 구워 육질이 부드럽고 육즙이 유지되고, 가스레인지 직화는 숯, 연탄에 비해 고기가 바싹 마르는 현상이 심하고 육즙이 쉽게 증발된다고 한다(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295331.html). 이런 이유로 집밥으로 맛있는 메뉴가 있고, 외식으로 먹는 음식이 맛있는 경우가 있나 보다. 예전엔 숯이 일반적이었지만, 지금은 가스레인지나 인덕션이 일반적이니 ‘집에서 한 번 해 먹어 볼까’ 싶을 때는 조사와 검색을 통해 맛을 내는 조리법을 파악하는 것이 좋겠다. 하지만 조리 매뉴얼에 답답한 것은, 재료와 조리 순서는 나와 있어도 불 조절, 즉 화공에 대한 이야기는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간혹 가열은 ‘큰불에서 시작해서 끓기 시작하면 중불로, 그리고 작은 불로 변경한다’는 말이 내가 본 전부다. 더 많은 검색과 조회가 필요하겠다.


인간은 문제에 직면하면 방법을 고안하고, 고안한 방법을 실행하며 이를 개선해 왔다. 덕분에 ‘생활 편이’를 향상시키는데 인간 정도의 전문가도 없다. 하지만 문제를 만날 때마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경우는 적다. 여러 사람이 함께 고민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뇌의 한구석에 그 고민이 남아 있다면,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예능을 시청하다가, 책을 읽다가, 다른 이의 행동을 보다가, 그냥 문득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그때 ‘일시정지’를 누르거나 책갈피를 꽂고 무언가를 스마트폰 메모장에 타이핑한다. 그리고 그 메모를 기반으로 글을 쓰고 블로그에 올린다.


왜? 출판이란 기록하여 남기고 전파하여 읽히게 하는 일이다. 내 생각을 주변과 공유하고 싶다. ‘좋아요’가 클릭되거나 덧글이 달리면, 그것을 알리는 빨간 표시자가 화면에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조회 수는 하루에 500회가 넘는 경우도 있고 매체 메인 화면에 게재되도록 선택될 경우 2천을 넘기기도 한다. 또는 이유는 아직도 모르지만 SNS를 통해 공유되면 3만 회가 넘기도 한다. 그럼 눈이 커다래지고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마약처럼 메모를 하고 글을 쓰고 블로그에 올린다. 아직 돈을 만들지는 못해도.


만화 ‘하이큐’에서 미들 블로커 츠키시마가 부 활동에 불과한 배구를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를 개인 훈련까지 하며 열정을 불사르는 이들에게 묻는다. 그때 돌아온 말은 “내가 고심해서 훈련한 것이 경기에서 먹혔을 때의 희열”이라는 답이 온다. 자신의 벽을 넘었을 때의 기쁨을 듣는다. 난 파워 블로거에 비하면 새발의 피 정도의 성과에 들뜨는 아마추어지만 이 기쁨은 나에겐 크고 그것이 블로깅을 계속하게 한다. 


얼마 전, 내가 필요하다 느낀 앱의 알림만 표시하게 하고 나머지는 모두 막아 버린 설정을 고쳤다. 설치한 모든 앱의 알림을 개방했다. 그랬더니 매체에 접근했을 때만 파악이 되던 트래픽의 흔적, 동감의 흔적이 실시간으로 내게 날아오기 시작했다. 며칠 만에 찾아 들어갔을 때 보고 느끼던 기쁨보다 더 컸다.


나는 20년의 직장 생활을 했다. 그동안 내가 아무리 잘 해도 그것은 회사의 성과이지 내 성과로 표시되지 않았다. 물론 인사 고과가 올랐고 표창도 받고 인센티브도 꽤 받았지만, 그 성과에는 회사의 명찰이 달렸다. 그래서 앞으로의 40년 동안은 성과에 내 명찰이 달리게 노력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런 나에게 내가 게재하는 블로그를 구독하기로 결정했다는 알림, 내가 올린 글이 좋았다는 알림, 내가 following 한 유명인이 나를 맞팔했다는 알림은 희열을 내게 하는 즐거움이다. 내가 제어할 수 있는 것은 글을 쓰고 게재하는 것뿐이지만 내가 제어할 수 있는 일에 열과 성을 다하다 보면 내가 제어할 수 없는 ‘공감’을 얻는다는 함수가 매우 신기하다. 이것이 성과에 내 명찰을 다는 과정이라 생각하니 더 열정이 발휘된다.


삶을 살면서 문득 떠오를 때 잠시 멈추고 메모를 하고 이를 글로 올리는 일을 난 블로그가 인터넷에 등장할 때부터 지금까지 해왔다. 물론 마음에 안 들어 백업도 없이 몇 번을 리뉴얼 했지만, 그때는 지금의 목표도 없었지만, 참 꾸준히 글을 써 왔다. 미래를 알 수 없는 사람이 앞으로 할 직업을 정할 때의 기준은 ‘집중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일’이라 정의한 나에게 지금 글을 쓰는 작업은 앞으로 내가 종사할 직업이며 내 이름을 걸고 행하는 작업이다.


여기에 더불어, 나는 잠시 멈추고 생각할 시간을 갖는다. 생각은, 정확히 표현하면 분석과 고민과 고안은 새로운 것으로 편집하거나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출발점이다. 인간이 지구상 최고의 편이 창출자가 된 바로 그 생각을 할 시간이 마련된다. 문득 떠오를 때 잠시 멈춤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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