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슉

2020. 2. 6. 14:37지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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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수육을 두 글자로 말하는 방법이다. 이니셜 만을 모아 말을 줄이는 것이 요즘 추세다. 마치 표음 문자를 모국어로 가진 국민들이 표의 문자를 갖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말을 줄여 버리면 줄임말이 의미를 가진 단어가 되어 버린다. 붕우유신 朋友有信(친구 사이의 도리는 믿음에 있다; 네이버 한자 사전)처럼,

탕수육, 햄버거 스테이크, 짜장면은 필자에게 일종의 '소울 푸드 soul food'이다. 

드라마 '동이'를 VOD Video on Demand 서비스로 다시 보다가, 극 중 그녀가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혜민서의 '죽'이라는 대사를 들었다. 극 중에서 주인공은 사흘을 굶다가 먹은 음식이어서 생각이 난다고 했다. 그럼 나에게 탕수육, 햄버거 스테이크, 짜장면은 어떤 존재일까?

3 가지 음식 모두 외식 메뉴였다. 평소 일상식을 먹어 오다가 가족이 모여 외식을 한 메뉴가 짜장면, 탕수육 그리고 햄버거 스테이크였다. 물론, 영양센터의 전기구이 통닭도 있었지만 외식이면 주로 먹은 메뉴가 이 3 가지 음식이다. 더구나 짜장면과 탕수육은 다이얼 전화로 배달이 되던 메뉴라 식탁에서도 먹었던 메뉴였다. '동이'의 주인공이 사흘을 굶다 먹은 죽과, 일상식을 먹다가 가족이 모여 먹은 3 가지 음식이 같은 의미일 수는 없다. 

요즘엔, 과거에 자주 먹던 메뉴 중 비상기 기억으로 회상되는 음식을 소울 푸드라고 부르는 듯하다. 실제로 소울 푸드는 흑인들의 음식을 의미한다고 한다. 향신료가 강하고 조리가 투박한 특징이 있다고도 한다. 다른 자료에는 1주일 중 유일하게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식사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러한 설명에 기초해 본다면, 짜장면, 탕수육, 햄버거 스테이크는 나에게 소울 푸드는 아닌 듯하다. 이 3 가지 음식의 명칭을 무엇으로 할지는 중요하지 않다. 왜, 특별한 실마리도 없이 상기되는 것일까?

짜장면은 한국화 된 중국 음식이다. 탕수육은 원래의 중국식, 그리고 햄버거 스테이크는 '본디 함부르크를 비롯한 독일 북부지역에서 먹던 갈아 만든 고기 스테이크인 하크스테이크(Hacksteak가 원형으로, 19세기 독일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들어오면서 햄버거 스테이크란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다(출처: 나무 위키)'. 짜장면은 완성식을 구입하지 않아도 중국 따장을 가지고 야채와 고기를 볶아 집에서 자주 해 먹는 음식이 됐다. 탕수육과 햄버거 스테이크는 부엌에서 튀김이나 지짐을 해 바닥에 기화된 기름이 살포시 내려앉는 것이 싫어 외식으로 먹는다.

간혹 집에는 햄버거 스테이크를 조리해 먹는다. 비록 일상식에서 코스 요리를 진행하지 않지만, 뜨거운 물을 부어 바로 먹을 수 있는 수프를 곁들인다. 그런데 과거의 그 맛이 나지 않는다. 맛이 부드러운 유니 짜장이었다. 케첩으로 소스를 만든 탕수육이었다. 브라운소스가 뿌려진 햄버거 스테이크였다. 요즘 식당의 이 메뉴들은 그때와 다른 레시피를 사용한다. 요즘 입맛에 맞게 변한 것일 것이다. 가끔은,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 맛이 아닌데' 싶을 때가 있다.

나는 짜장면, 탕수육, 햄버거 스테이크의 맛을 그리워하는 것일까? 어린 마음에 맛있게 먹었고, 몇 번을 먹어도 질려하지 않았으며, 언제나 한 그릇 혹은 하나 더 먹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을까? 혹은 매번 외식 때마다 먹어 각인되어 버린 것일까?

짜장면은 서툰 젓가락 질을 하던 시절이었다. 탕수육은 손가락을 사용했다. 햄버거 스테이크는 포크와 나이프를 함께 사용했지만 서투르게 자른 기억이 있다. 젓가락 질은 어머니가 옆에서 차분히 가르쳐 주셨다. 포크와 나이프 사용법은 어머니 혹은 아버지가 가르쳐 주셨다. 탕수육도 젓가락으로 먹도록 유도됐다. 햄버거 스테이크 혹은 돈가스 집에서 테이블 매너 중 몇 가지를 배운 기억이 난다. 냅킨은 어떻게 하고, 다 먹고 나서 포크와 나이프는 그릇의 어디에 어떤 방향으로 놓고 등등. 중국집에서 단무지 외에 양파를 먹어본 기억. 양파는 따장에 찍어 먹는 것이 맛있다는 말씀에 시도했다가 찡그린 기억.

언제나 바빠 저녁은 항상 어머니와 우리 남매만 먹었다. 휴일 아버지와 함께 저녁을 먹더라도 얼른 먹고 TV 앞으로 뛰어갔던 것 같다. 그런데 외식에서는 먹는 법, 테이블 매너, 식기 사용법 등을 대화를 통해 혹은 부모님이 하시는 방식을 보며 배운다. '배운다'기 보다 대화를 했다. 오롯이 식사와 테이블과 함께 앉은 가족들의 얼굴에 집중했던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그 분위기를 상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행동들이 먹은 횟수와 더불어 3 가지 음식을 비상기 회상이 가능한 음식으로 만든 것은 아닐까 싶다.

일상 식에서는 왜 이렇지 않을까? 매일 사용하는 숟가락 젓가락. 밥에 찌개나 일품 메뉴. 별로 대화할 거리가 없어서 인가? 허기를 채우고, '오늘 저녁 맛있는데' 정도의 대화가 일상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간혹 그 손맛이 생각난다. 그것은 그리움이다. 그런데 이 3 가지 음식의 기억에 그리움은 없다. '다시 한번 먹고 싶다'라는 생각 말고는 없다. 이건 도대체 무엇으로 정의하고 분류하고 정리해야 할까? 

굳이 할 필요 없을까? 그냥 오래된 중국집이나 외식 집에서 예전 레시피 대로의 짜장면, 탕수육, 햄버거 스테이크가 나오면 '와! 예전 맛이네!' 정도로 표현하면 되는 걸까? 그렇겠지? 뭐든 정의하고 정리하고 분류하여 정체를 명확히 할 필요는 없겠지? 그냥 그리운 대로, 생각 나는 대로 떠올리며 오늘도 살아가면 문제없는 것이겠지? 삶이란 그런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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