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27. 12:25ㆍ지난 글
스크롤 속도가 빨라진다. 각종 앱의 업데이트 리스트를 살펴보는 속도가 빨라진다. 뉴스 리스트가 빠르게 스크롤 업 된다.
새로운 것으로의 갈구가 아니다. 익숙한 것에 대한 식상함이다. 빠른 스크롤을 통해 익숙하지 않은 것을 찾고 그것이 신선하고 흥미로운 것(fun things)인지 확인한다. 한 동안 새로 발견한 세계에 머문다.
창작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동향에 부응할 역량은 없다. 부응의 반사 이익(returns)이 크려면 대상 규모가 커야 하고 그 그룹에서 ‘돈을 내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100인 100색의 세상. 그래서 부응할 역량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창작은 자신의 세계관을 타인이 이해할 수 있게 이야기하는 행위다. 그 세계관에 공명하는 사람들이 많고, 공명 그룹 중 팬심(fan’s mind)이 구축된 사람이 많을 때 작품은 대중성을 갖는다. 이러한 이유로, 전문가가 추천한 작품은 재미가 없는 경우가 많고 애호가가 추천한 작품이 갖는 적중도가 높은지도 모르겠다. 애호가의 선정은 주로 내 취향이 기준이 되므로.
인기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공언하는 행위는 무작위 추첨 숫자를 맞출 수 있다고 장담하는 행위다. 그렇다고 창작품이 대중성을 갖는 것이 무작위 숫자 맞추기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렇게 황당한 공언이라는 말이다.
창작의 결과는 사는 세상의 마음보다 앞설 수도, 뒤쳐질 수도, 동일선 상에 있지만 공명되지 않을 수도 있다. 앞섰다든지 뒤처져 있다든지를 아는 것은 동향을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이니 다행이다. 공명을 얻을 방법을 찾는 단계로 전진할 수 있다. 공명 받지 못하다는 것은 동향을 몰라도 알 수 있다. 결과가 말해주기 때문이다. 공명 받지 못하는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 대중에게 다가가는 것은 무모하다. 100인 100색의 세상. 무모하다. 자신의 세계관을 변화, 전환하는 것이 비교적 올바른 방법이다.
관심 가지 않은 대상을 관찰하고 감각한다. 기존 호불호를 앞세워 선택하던 세계의 문을 연다. 대상을 만나고 관찰하고 살펴보면서 호불호를 정하고 물러서지 않는다. 목표는 다르다. 관심 가지 않는 대상을 관찰하고 감각하여 하나의 존재로서의 장점, 좋은 점, 긍정적인 면, 호응 받는 부분을 살펴본다. 이렇게 발견한 장점, 좋은 점, 긍정적인 면, 호응 받는 부분을 ‘인정’하는 순간 나는 변화하고 있다고 판단해도 다르지 않다. 왜 장점인지, 좋은지, 긍정적인지, 호응 받는지를 알게 되면 내 세계는 활짝 열린 것이다.
새로운 관찰 감각 시간 동안에도 창작은 지속한다. 세계의 문이 활짝 열린 시점 이후의 창작은 변해있을 것이다. 이유는 많이 알수록 취향이 변하기 때문이다. 호불호를 쫓지 않는다고 했지만 버리기 어렵다. 그러나 폭 넓은 관찰과 감각, 그 결과에 대한 인정과 수긍이 내가 가진 좋아하는 점, 긍정적인 점, 장점의 폭을 넓히고 나도 호응하게 된다.
세상과 공명하지 못하는 자신, 자신을 닫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문을 열고 나가 호불호가 아닌 관찰을 앞세운다. 모든 것을 감각해보고 탐구한다. 생소한 단어는 사전을 찾고 모르는 것은 검색을 한다. 그런데 이 방법은 달성에 소요되는 시간이 얼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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