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30. 13:17ㆍ지난 글
에세이: 옵티미즘 Optimizm
오후 6시 퇴근은 물 건너갔다. “늦어~~”라는 목소리가 흐르자 아내는 “전화기 볼륨 줄였어?”라고 되묻는다. 매일 이야기하기 미안하니까 그렇지. 더 안 좋은 소식은 이번 주 주말은 회사에서 보내야 한다는 뉴스다. 그것도 정시 출근. 역시 이 세상에 정시 출근은 있어도 정시 퇴근은 없는가 보다. 회사 생활 10년이 넘었는데 이제야 알았다는 듯이 혀를 “쯧” 차게 된다. 이번 주말 외식은 다음 주로... 어떻게 미루지? 도대체 팀장님 승진하신지 3개월도 안 됐는데 왜 저러시지? 일이 게릴라성 폭우로 내려. 사업부라 원래 일이 많지만 벌써 1년 이상 풀가동이네. 팀장님이 저러신다는 것은 상무님께 무슨 일이 있다는 의미? 상무님 이번에도 전무 못 되신 건가? 그리고 이미 완료 사인 받고 넘긴 일이 왜 돌아오지? ‘이번엔 뭐가 문제야? 누가 일 저질렀어!’
문서 번호는 항상 Version 0.1로 시작한다. 그런데 이미 Version 1.2! 제발 수정 사항은 한 번에! 그리고 지시 내려놓고 말 바꾸지 말라고! 진작 외장 디스크를 사 두었으니 망정이지 하드 디스크가 모자랄 뻔 했다. 덕분에 점점 얇아지는 회사 노트북에 USB 포트가 줄어들어 외장 하드 디스크를 끼우면 마우스랑 LAN 연결용 USB 케이블을 못 쓴다. USB 허브 어디 두었지? 이 참에 무선 마우스로 바꿀까? 배터리는 돈이 드니 충전지로 해야겠지? 충전지는 뭐 이렇게 비싸? 그런데 무선 인터넷은 언제 되는 거야? 무선 랜으로 사내망 연결은 왜 막는 거지? 이전 자료 찾을 때마다 외장 디스크를 바꿔야 하네. 어? 예전 외장 디스크는 케이블이 다르네? 케이블 어딨지? 버렸나? 다시 살 수 있나?
이런 나날이여도 목표한 ‘한 달에 책 한 권 읽기’, 이번 달도 달성! 오롯이 나 혼자 있을 수 있는 출퇴근 지하철 안. 하루 중 유일하게 달성감이 드는 시간이다. 하지만 출근에 1 시간, 퇴근에 1 시간. 운동 가는 날에는 회사에서 피트니스로 30분, 피트니스에서 지하철역으로 25분 걸어야 한다. 버스 노선이 없다. 출근 전에 혹은 일찍 퇴근하면 가려고 회사 근처에서 골랐는데. 싼 데 찾다가 여기에 걸렸다. 운동은 그렇다 치고, 집에서 10분 걸어서 전철역, 표 끊고 걸어 들어가 대기, 지하철 30분 타고 상경. 내려서 15분 걸어 출근. 퇴근은 역방향. 전세금 올라 찾은 집이 수도권. 철야 하면 택시 25분 주행에 3만 원.
유기농 코너를 주로 이용한다. 가능한 건강한 먹거리를 섭취하려고. 유기농인데 벌레 먹은 곳이 없네? 잘 고르셨나 보다. 채소와 과일은 유기농으로, 고기는 한우, 우리 돼지 혹은 우리 닭. 요즘 사람들은 어떤 건강식을 하는지 빠짐없이 SNS와 포털에서 정보를 모은다. 해산물은 틈틈이 아파트 공동 구매로 산지에서 직송. 부모님께도 보내 드린다. 이번엔 유기농 감자를 직거래 한다고 하네. 그래도 완전 조리 식품은 피하고 시간이 없어도 셰~프 레시피나 황금 레시피를 찾아 조리하니까 건강에 도움이 됐겠지? 식칼 잘 못 다루니까 채칼 중심으로 조리한다. 요즘은 채칼로 양파도 얇게 혹은 두껍게, 양배추 채도, 김밥 재료도 채칼로 가능하다. 여러 종류의 칼과 보조 판이 있어서 도마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균일한 두께에 손도 베이지 않으니 일석이조인가?
체중이 줄지 않는다. 운동을 하면 지방이 줄고 근육이 늘어서 체중으로 체크하지 마라고는 하지만 운동 끝나면, 간혹 러닝머신에서 내려오면 체중계로 간다. 이번 주 상체 웨이트에 신경 썼으니 근육이 보이겠지? 더 들어야 하나? 그런데 바지는 여전히 34. 설마 벌써 복근이? 남은 복부 지방을 복근이 밀어서? 수도승이라도 된 듯 묵묵히 역기를 들지만 모든 계측치가 크게 내려가거나 늘어나지 않는다. 칼로리를 태우기 위해 유산소 운동 기구에도 빠짐없이 올라가는데. 단백질 보조제를 먹어야 할까? 고 단백 저 탄수화물식을 해야 하나? 간헐적 단식? 아이돌 식이요법? 답이 뭐냐? 이럴 바에 PT 서비스를 이용할걸.
팀장한테 된통 당하고 친구 놈 불러서 술 한 잔 한다. 홧술이 몸에 안 좋다지만 성토할 때 술이 최고. 그런데 이 자식은 도대체 누구야? 누구 친구여? 왜 팀장을 두둔하는 거야? 술값도 내가 내는데. 예상보다 일찍 술자리를 뜬다. 택시를 불러 타고 3만 원을 내고 집 앞에 내린다. 아내가 ‘또 술! 야근 아니면 술!’이란 레이저 광선을 번개같이 쏘고 술 냄새 난다며 방으로 들어간다. 가방은 서재에, 양복도 냄새 난다니 탈취제 뿌려서 서재에. 그리고 정신 추슬러서 가능한 깨끗이 샤워와 양치를 하고 조용히 침대로 들어간다. 아! 내일 오전 6시 화상 회의! 지금은 밤 12시.
이렇게 적고 보내 나름대로 ‘현대인의 노력’은 열심이 한다. 꽤 충실하지 않나? 그런데 왜 행복감이 들지 않지? 땀은 났는데 시원한 바람이 불지 않는다. 내가 웃을 일도 타인이 (아내 포함) 내게 웃을 일도 없다. 하루가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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