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7. 27. 15:22ㆍ지난 글
종이를 사용하지 않는 사무실을 한 때 Paperless Office라 칭한 적이 있다. 프린터 회사가 들으면 큰 일이 날 세상이고, 모니터와 컴퓨터, 모바일 디바이스 회사는 적극 목소리를 높일 캠페인 주제다.
한 때, 창고형 매장에서 저렴한 값에 다량의 A4 용지를 구매해 사용한 적이 있다. 자료를 읽을 때 인쇄된 종이를 클리어 파일에 넣고 다니며 읽었다. 집에는 흑백 레이저 프린터가 있어서 워드 프로세서 10 페이지 정도는 순식간에 인쇄했으니 굳이 메모도 필요 없이 웹브라우저에서 인쇄 버튼만 누르면 되었다. 디지털 세상의 시작이지만 데이터는 종이로 보던 시대이기도 했다.
애플이 모바일 세상의 처음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시선은 점점 종이에서 모니터로 옮겨졌다. 손안의 모니터로 볼 것들이 점점 많아졌다. 검색도 굳이 PC를 켜지 않고 모바일 장비로 했다. 사전 역시 중고서점에 팔고 온라인으로 이용했다. 인쇄해서 보지 않고 모니터로 봤고 나중에 볼 것은 북 마크했다. 이로 인해 모니터를 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레이저 프린터 위에는 먼지가 쌓이기 시작했고, 천 덮개로 위를 덮어 보호했지만, 덮개를 치우고 인쇄를 하는 날은 점점 줄어들었다. 이른바 Paperless Home 혹은 일상이 됐다.
매년 말 혹은 매년 10월이면 큰 서점에 갔다. 다음 해 플래너를 구입하기 위해. 예전엔 논어가 자기 개발의 기준이었다면, 현대의 필자에게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 그 역할을 했다. 그로 인한 연쇄로 나는 그 플래너를 10년 이상 매년 구입해 반을 빈 칸으로 남기고 보관 상자에 넣었다. 그런 내가 싫어서 보관 상자 채로 버린 적도 있다. 그래서 내 추억에는 중간이 없다.
보관 상자를 버릴 때 플래너 활용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프랭클린 플래너의 원리로 만들어진 앱을 사용했으니까. 그러던 내가 작년부터 그 앱을 지우고 폰에 기본으로 설치되어 있는 캘린더와 미리 알림 앱으로 그 역할을 대신했다. 결과론적으로 유사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활성화 되고, 사업의 장이 되며, 이제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삶의 방법이 인터넷 중심, 원격 중심이 됐다. 매주 혹은 격주로 소모품을 채우고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는 방식이 마트 방문에서 온라인 주문으로 변모했다. 최근 마트를 방문하는 이가 늘고 카페와 레스토랑에도 손님이 서서히 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주문은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이로 인해 모니터를 중심으로 삶의 방법이 변화됐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원격 및 온라인으로의 일상 방법의 변화는 어찌 보면 강제적인 측면이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했고 실내에 들어가는 것을 피해야 했다. 지금은 다시 마트에 가긴 하지만 손님은 그 전만큼 많지 않고 주차장도 한산한 편이다. New Normal 혹은 Next Normal로의 전환이 일어나는 과도기일 것이다.
필자는 다이얼 전화기와 흑백 TV에서 호출기(삐삐)와 스마트폰, UHD TV로, 286 PC와 PC 통신에서 모바일 디바이스와 인터넷 포털로, 구멍가게와 시장에서 마트와 전자상거래로 전환되는 모든 과정을 겪은 세대이다.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과 진입, 생활화를 그대로 겪었다. 그러니 종이에서 모니터로의 이전은 코로나 사태가 없었어도 당연히 이동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프라인의 시간이 온라인의 시간보다 긴 탓에 아직 버리지 못한 습성이 남아 있다.
빈 칸 많게 보관해 둔 옛 플래너를 꺼내 메모장으로 사용하는 내가 있다. 페이지를 넘기며 메모할 것을 펜을 들고 갈피를 열어 적는 것이 아직 모니터를 켜고 앱을 켠 후 타이핑을 하는 것보다 빠르다. 모니터를 주로 사용하면서도, 펜이 종이 위를 지나며 내는 ‘사각’ 소리가 그리운 내가 있다.
대기업은 당시의 첨단 기법과 기술을 가장 빠르게 도입해 사내에 전파하는 조직이 아닐까 한다. 사원 교육으로 이슈 트리(Issue tree)를 수강한 필자는 모든 기획 활동 이전에 이슈 트리에 기반 해 생각을 정리했다. 생각나는 대로 트리를 잔뜩 벌여놓고, 이를 누락됨이 없고 중복됨이 없게 다시 정리를 한다. 그리고 다시 검토한다. 지금 하는 기획이 과연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인지 반복해서 검토한다.
그래서 한 동안은 생각을 정리할 때 PC를 켜고 이슈 트리 프로그램을 기동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필자에게 원인을 알 수 없는 변화가 생겼다. 메모장으로 활용하던 이전 플래너에 아이디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슈 트리라는 형식도 사용하지 않는다. 보고 들은 내용을 잊지 않기 위해 수첩(구 플래너)을 펴고 샤프 혹은 볼펜으로 적던 필자가 그 지면 위에 아이디어를 적기 시작했다.
신기한 일은, 키보드를 두드려 생각나는 바를 적는 것보다, 종이 위에 펜으로 적는 것이 생각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아직은 종이를 사용하던 기간이 모니터를 사용하던 기간보다 길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286 PC 사용 이후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키보드를 두드리던 필자인데. 물론 과도기가 있었다. 휴대용 모니터가 실 생활화되기 전까지 가방에는 언제나 메모할 종이와 펜이 들어 있었고, 이를 PC 옆에 펼쳐 놓고 병행 사용했다.
결과적으로 종이 사용 기간이 더 길다. 신기할 정도인가 싶은 결론이긴 하지만, 2020년 현재 종이에 펜으로 적어나가는 것이,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보다 생각을 방해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다. 개인의 느낌일 수 있으나 ‘펜을 들어야 머리가 돌아가는 구나‘ 라는 지경에 이르렀다.
왜 그럴까?
필요한 것은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일정과 할 일은 캘린더와 미리 알림 앱에 적으면서, 무언가를 기획하거나 생각할 때는 펜과 종이를 집는다. 그리고 생각에만 집중하면 손이 자동으로 움직여 이를 문자화 한다. 마치 자가용 승용차를 마차로 전환했는데 주위 풍경이 눈에 더 잘 들어오는 느낌이다. 이렇게 종이에 쓴 것은 해당되는 앱으로 옮기지 않으면 다시 찾기에도 힘이 든데 굳이 디지털화 하지 않는다. 끈으로 된 갈피를 들어 해당 페이지를 펴고 수첩의 앞 장 쪽으로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적어 놓았던 아이디어를 찾는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아이디어나 생각을 새로운 페이지에 적는다.
이러다 보니 책상 위에는 사라졌던 종이와 펜이 다시 놓이게 됐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필자의 우측에는 얌전히 구 플래너와 샤프가 놓여 있다. 책을 읽다가도 스마트폰의 메모장을 열지 않고 갈피 해 둔 페이지를 펴서 메모한다. 역행이다. 나쁜 의미는 없지만 지나온 나날들로 생각하면 역행이 확실하다.
역행이라는 말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어쩌면 필자는 원인을 알 수 없지만 ‘지금 이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선택하며 사는 지도 모른다. 그것이 과거에 사용하던 방법이든, 새롭게 배운 방법이든.
필자는 PC와 모바일 기기가 빠른 처리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적어도 ‘메모’라는 행위에는 수첩과 펜이 빠르다. PC와 모바일 기기는 배터리를 사용하므로 언제든 전원 스위치만 누르면 켜지고 사용하게 되며, 그 시간이 3분을 넘기지 않는다. 그러나 3분 동안 기동을 마치고 작업 프로그램을 켤 때까지의 시간은 대기해야 한다. 하지만 수첩과 펜은 갈피를 들어 펴면 바로 적을 수 있다.
이성적으로 하나 둘 따져서 결론에 이르러, 수첩과 펜이 대기 시간이 적으니 이를 사용하겠다고 결심한 과정이 아니다. 그냥 수첩과 펜을 집어든 것이다. 모바일 기기는 24X7 내내 켜져 있으니 전원을 킬 이유는 없다. 시작 버튼을 누르면 그 사이 지문을 인식해 홈 화면이 기동된다. 앱을 클릭하면 바로 열린다. 30초가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구 플래너를 열고 펜으로 쓰는 데는 10초도 걸리지 않는다. 그래서 수첩과 펜을 다시 사용하는 지도 모르겠다.
막상 종이와 펜으로 돌아가니 생각하는 동시에 손이 움직인다. 30년 가까이 키보드를 매일 사용해 온 필자이지만 오타에 신경을 써서 인지, 생각이 중간 중간 끊기는 것 같다. 물론 이는 필자 개인의 느낌이다. 펜은 오타가 나건 나지 않건 나중에 알아 볼 수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이는 습관의 문제일까? 오타가 나건 나지 않건 손가락을 움직여 타이핑을 치고 고치는 것은 나중에 하면 동일할 텐데.
생각은 그렇지만 오타에 신경 쓰는 이유는 그 ‘나중에 수정’하는 것을 생산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종이와 펜을 쓰면 내용만 이해하면 되지 오타를 수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타이핑은 혼자 보기 위해서라기보다 보고서를 내는 일에 주로 사용한 덕분에 오타에 민감해진 습관을 아직도 가지고 있을 것일 지도 모른다.
원인이야 어찌됐든, 종이와 펜은, 적어도 필자에게는, 생각을 방해하지 않는 메모 방법이다. 아직도 메모장으로 쓸 플래너는 많다. 플래너로 역할을 수행할 때는 그 장을 다 채우지 않아도 시간의 흐름대로 페이지를 넘겼지만, 메모장으로 사용되는 지금은 메모로 페이지가 채워지지 않으면 페이지를 넘기지 않는다. 당연히 사용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앞으로 꽤 활용할 종이가 많이 남은 셈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나?’, “이렇게 자주, 이렇게 길게, 이렇게 빈번히 생각하는 사람이었나?‘ 라며 최근 몇 년간 적은 내용을 살펴보면 슬쩍 웃음이 난다. 그렇게 이성적이고 사색적이며 검토적이고 복기적인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종이에 적은 내용을 다시 보면 분야는 천만 가지요 개수는 억만 가지다. 그 중에 ’무엇‘으로 생산된 내용은 많지 않다. 참고하고 넘어간 내용도 있고 그 때뿐인 생각도 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열심히 궁리해야 하고, 궁리한 것을 기록해 두어야 다시 보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유시민 작가는 ‘항소 이유서’를 쓰기 전에 머릿속으로 쓸 내용을 정리했다고 한 예능에서 밝혔다. 나도 그렇게 해 볼까? 보조 기억장치를 굳이 사용하지 않고 머릿속으로 정리해 볼까? 그것이 더 나아 보인다. 지적 능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생각나는 것을 메모하는 행위는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유시민 작가는 옥중에서 부족한 자원으로 문제를 해결하다보니 그렇게 한 것이다. 멋있게 보인다고 따라할 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필자는 지금 아직 재활용할 종이가 많은 상태다.
아마도 삶을 제대로 살고 싶은 필자에게 최근 생각과 상기, 되뇜과 아이디어가 많아지면서 몸에 익은 방식대로 행하다 보니 종이와 펜을 들게 된 것일 것이다. 생각하고, 상기하며, 되뇌고, 새로운 생각을 떠올려 어제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면 되는 것일 것이다. 종이와 펜을 사용하던, 기억 세포에 펼쳐놓고 퇴고를 거듭하든 그것은 형식이자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손에 착 붙는 방법대로 하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잘 맞는 삶의 방법일 것이다.
말미에 밝힐 것은, 이 글은 이슈 트리로 사전에 정리했거나, 종이와 펜으로 아이디어를 정리한 것을 다시 보며 쓴 글이 아니다. 워드 프로세서를 켜고 생각나는 대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추구하는 바는 없다. 그냥 그렇게 하고 있다. 이것이 첨삭을 거듭해 필자의 손에 맞는 방법이 된다면 남아 있는 구 플래너는 추억 속으로 자리를 옮기게 될 것이다. 그래서 더 나아진 것인가 하면 개인적으로는 다를 바 없다. 다만 종이라는, 펜이라는 물질적 자원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니 나무 가지 하나 덜 소비하게 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기여는 한 셈이 될 것이다.
'지난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복, 절대적이자 상대적인 감각 (0) | 2020.07.28 |
---|---|
바쁘지만 지루한 세상 (0) | 2020.07.28 |
코로나 중 소비자 정서 및 행동 변화 (0) | 2020.07.23 |
있는 그대로 (0) | 2020.07.22 |
New Normal: 여행 외 (0) | 2020.0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