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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른이 된다는 것
    지난 글 2017. 7. 3.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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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라사와 나오키 / 20세기 소년

    *요시모토 바나나 / 어른이 된다는 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두 발로 서서, 어느 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타인과의 관계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여기서 내리는 ‘어른이 된다는 것’의 정의에서는, ‘의지하지 않고’라고 표현한다.

    타인과 상호 협력을 하고, 서로의 가치를 나누어, 보다 나은 가치를 만들어가는 것은 협업 혹은 협력이라고 한다. 이것은 타인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다. 의미한다는 것은, 타인의 가치를 이용할 뿐, 난 타인에게 줄 것이 없는 상태이다. 다른 말로는 ‘민폐’가 있다.



    후쿠베는, 켄지 들과 놀고 싶었다. 비밀 기지를 만들고, 그들만의 문화를 구축해 나가는 그 모습들 속에 어울리고 싶었다. 그러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니 이루어질 수 없었다. 

    후쿠베는 세상을 만신창이로 만들고 나서야 ‘켄~지, 놀~자’라고 이야기했으니까. 켄지는 자신의 잘못으로 세상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며, 죽었다가 살아나고 온갖 고초를 겪으며 세상을 구하려고 했다. 그러나 후쿠베가 한 번도 자신들에게 다가와 함께 놀자고 요청한 적이 없다는 것을 기억해 내지 못했다. 모든 어른들이 어린 시절 일을 잘 기억 못하듯이.

    후쿠베는, 처음부터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응석을 부리고 있던 건지 모른다. 그들이 다가와서 자신을 데리고 가길 원했다. 그들이 자신을 투명인간 취급한다 생각했다. 그래서 화를 내기 시작했다.



    결국 어른이란,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밝히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마음속에 담아 두기만 해서는, 그냥 하염없이 쳐다보기만 해서는, 그런 노력에는 그 누구도 반응하지 않으니까. 명확히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는데,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받아들여주지 않는다면, 화를 내도 무방하다. 물론, 독가스로, 폭탄으로 세상을 무너뜨리면 안 되지만. 후쿠베는, 켄지와 친구들이 구상한, 미래 이야기를 현실로 이루려 했다. 그렇게 하면, 자신에게 친구하자 하지 않아 자신이 화가 나 있다는 것을 켄지에게 인식하게 할 것이라 생각했나? 



    사실, 술 도매상 아들인 켄지는 부모로부터 받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후쿠베는 공부도 잘 했을 뿐만 아니라, 만국 박람회도 보고 싶으면 볼 수 있는 환경이었다. 이쯤에서 눈을 우리의 현실로 돌려보자. 아이들의 교육 환경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양질의 교육이 양질의 인간을 만든다는 그 생각에는 필자도 이견이 없다. 그러나 양질의 교육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스스로의 힘으로, 두 발로 서서 앞으로 나아갈 어른이 되도록 돕는 교육일까? 사교육을 통해 학교의 진행 속도를 무리 없이 따라가게 부모가 최선을 다하는 것? 사실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 이것은 훈련이다. 기능적 능력을 배양하는 훈련이다. 그렇다면 교육이란 무엇인가?



    후쿠베의 집처럼 여유가 있는 집에서,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방법을 교육하기엔, 적어도 지질한 켄지의 집안보다는 기회가 많았을 것이다. 의식주 걱정을 하지 않는 대신, 바람을 이루지 못해 고민하지 않는 대신,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이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교육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세상을 올바로 보고 세상을 구하려는 사람은 지질한 환경에서 자란 켄지다.



    켄지는 어려서부터 현실적 한계라는 것과 끊임없이 부딪히며 살아왔다. 록을 좋아하고 전기기타만 있으면 무적이 될 수 있다 생각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러나 누나가 아끼고 아낀 돈으로 무기를 사주면서 세상을 다 갖은 듯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러나 그는, 제플린 등의 록 스타들처럼 연주할 수 없었다. 밴드를 구성해서 드디어 무대에 섰지만, 반응을 얻을 수 없었다. 그는 술 도매상 자리에 프랜차이즈 편의점을 차리고, 영업 담당의 눈치를 보며, 누나가 맡긴 아이를 등에 지고 살았다.

    그러한 옥죄는 현실이, 풍족하고 여유 있는 현실보다, 인간을 어른으로 만드는 과정이 되어 버린 것 같다. 20세기 소년의 이야기를 그렇게 진행된 것 같다. 풍족하게 원하는 것을 이루다 보니, 그것이 현실이 되고,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히면 화가 나는 것일까? 그렇다면 어른이 되는 과정에는, ‘없음’의 현실을 느끼는 과정이 필요한 것일까? 부족 혹은 부재의 상황이란, 안타깝고 아쉽고 애잔한 상황을 거치지 않고는, 제대로 된 어른이 될 수 없는 것일까? ‘없음’의 환경을 거쳐, 현실을 깨닫고, 욕심부리지 않고 참고 인내하며, ‘없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른이 가진 마음의 한 부분일까? ‘없음’은 인정함으로써, 타인에게 폐도 끼치지 않고, 자신의 체면을 져버리는 일도 행하지 않아, 사회적 무질서를 낳을 기회를 없앨 수 있는 것일까? 여기까지 이야기하다 보니, 너무 지질하다.



    오히려 어른이라면, 슬기로운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해야 하지 않나?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 그것을 이루는 방법을 찾아 보자. 이런 방법 저런 방법이 있는데, 이런 방법은 다치는 사람이 많이 나오고, 저런 방법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럼 저런 방법을 택하고, 시간을 줄이기 위해 협력할 대상은 누구일까? 이런 사고의 과정이 어른의 모습은 아닐까? 그런 모습이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것은 아닐까?



    어리광의 사전적 의미는, ‘어른에게 귀염을 받거나 남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고 어린아이의 말씨나 태도로 버릇없이 굴거나 무엇을 흉내 내는 일’이다. 버릇없이 독가스를 살포해서 무수한 사람들을 죽였고, 21세기에는 반양자 폭탄을 터트릴 뻔하기도 했다.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 버린, 그래서 ‘못 이길 것 같으면 도망가라’고 말할 정도의 어른인 켄지에게 귀염을 받거나 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해, 로봇을 만들고, 생화학 병기를 만들었나? 



    어른이란, 살아오며 겪은 일에서 통찰을 얻고, 그로 인해 성숙해져, 자신의 나이에 맞는 향기를 풍기는 사람이라 정의하고 싶다. 살아오며 겪은 일이 100가지라면, 이 중 몇 가지에게 통찰을 얻을지는 자신의 역량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단 한 가지라도 제대로 된 배움을 겪어 더 성숙해진다면 어른에 가까워진다 하겠다. 후쿠베는 멈춰 있었던 것이다. 나이가 들었는데도, 10대 전후 초등학생의 생각으로 세상을 살았던 것이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어른이 된다는 건’에서 몇 가지 질문을 한다. 

    -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 공부는 꼭 해야 될까?

    - 친구란 뭘까?

    - 똑같다는 건 뭘까?

    - 죽으면 어떻게 될까?

    - 나이를 먹는다는 건 좋은 일일까?

    - 산다는 것에 의미는 있을까?

    - 열심히 한다는 건 뭘까?



    이 질문들에 대해, 자신이 지나온 시간들을 르포처럼 전하고 있다. 한 사람의 이야기라, 유명 작가의 이야기라도 동의하기 어려운,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있지만, 이 한 가지는 공감한다. 어른이란, 두 발로, 스스로의 힘으로 서서, 자신의 길을 가는 존재라는 점.



    그럼 어떻게 하면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아니, 그전에, ‘난 어른인가?’



    어른의 정의를 ‘나이만 먹고, 눈앞에 어른거리며, 잔소리나 쏴 대는 인간’이라 인식하고 있다면, 누구나 다 어른이다. 그러나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정의라면 ‘성장’이란 관문을 거쳐야 한다. 성장이란 과정을 통해 올바른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징징 대거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음대로 하려 하거나 하면 어른이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나이를 먹어간다고 하여 이런 일들을 해낼 수 없다. 여기에 협업과 협력이라는 사회적 관계가 필요하다. 모범을 보이는 진정한 어른도 있어야 하고, 그것이 따를 만한, 참고할 만한 어른이라고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 사회 문제나 범죄를 줄이는 방법, 사람으로 인한 짜증을 줄이는 방법은, 어려서부터 제대로 된 교육 환경 속에서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효율적이고 빠른 방법이라고, 규칙을 정해두고 어긴 사람에게 뭇매를 주는 것만이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올바른 방법은 아니다.



    -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고, 그에 필요한 공부를 하는 것. 그리고 무언가를 이루어 그로 인해 자립을 하는 것이 어른이 되는 첫 발일 것이다. 즉, 자기 자신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 말이다.

    - 서로가 가진, 가치 있는 재능을 나누어, 서로가 지금보다 나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여 노력하는 관계가 친구이다. 그렇다고 나눌 가치가 없다고 매몰차게 내치는 것은 어른은 아니다.

    - 평범과 상식이란 늪 속에 발을 빠져들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과 상식이란 교양을 가지고 타인에게 폐를 끼치거나 스스로의 체면을 버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이 어른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의지로 태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산다는 것에 의미를 찾기 어려운 것이다. 의식을 차려보니 이 세상에 태어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려움이 많을, 삶의 의미 찾는 길을 걸어야 할까? 나를 멋대로 태어나게 한 부모가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지 않나? 이런 풍진세상에 살게 했으니 말이다. 부정하기엔 어려운 말이긴 하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자신의 체면을 내버리지 않는 사람이란 협의의 의미는 재미가 없다. 해서 즐거운 일을 하며, 때로는 타인을 돕는 그런 삶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이렇게 살려면, 능력을 길러야 한다. 두 발로 설 힘을 길러야 한다. 그래야 보람을 느끼며 자유롭게 살 수 있다.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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