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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을 지킨다
    영화 이야기 2022. 2. 22.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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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게 닿는 사랑은 비단 연인이 주는 사랑 만이 아니다. 부모, 형제, 자매, 남매, 친지, 지인, 반려동물 등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의 이해당사자가 사랑의 대상이다. 우리는 많은 사람과 감정을 나눈다. 때로는 깊게, 때로는 얕게. 때로는 좋은데 어찌할 줄 모르고, 때로는 적당한 거리를 둔다. 모두 감정이 이끌고 상대에 대한 인상에 좌우된다. 그러다가, 좋아지기도 하고 좋아하는 마음이 엷어지기도 한다. 가슴 아프지만, 헤어지고 나서야 그 사람이 진정 좋았다고 깨닫는다. 헤어지고 나서 속 시원하다고 생각이 드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생각조차 없는 경우도 있고, 헤어짐은 사람이 감정에 빠지게 하기 때문이다.

     



    영화 '초속 5 센티미터'는 마음에 담은 사람과 떨어져 지내고, 뭔가 모를 공허함을 가진 채 결혼을 하고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인공 2 사람은 왜 상대를 꽉 잡지 않았을까? 헤어져야 할 외부 요인이 있었지만, 편지로 왕래를 하고 눈으로 전철이 막힌 후에도 그를 몇 시간 동안 기다린다. 그들은 삶의 진행에 맞서지 않는다. 그를 잡기 위해 그녀와 함께 하기 위해 이사를 미루고 다시 만날 약속을 단단히 하지 않는다. 마치 외부 요인이 이길 수 없는 강제라도 되듯.

     


    실제로 벚꽃의 낙하 속도는 초속 5cm가 아니라고 한다. 1초에 10~50cm를 이동한다고 한다. 팬이 보낸 전자메일의 제목과 사연에서 영감을 받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선택한 영화 제목이다. 영화의 영문 제목은 'a chain of short stories about their distance; 우리 사잇 거리에 관한 단화(短話)'이다. 이 영화의 OST 야마자키 마사요시의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의 가사 첫 줄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이상 무엇을 잃어야 마음이 용서받는 걸까

     

     



    두 사람의 관계에서 용서 받을 일이 있을까? 단지, 흘러가는 대로 저항하지 않았다는 점이 용서받아야 할 죄일까?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상대를 '반드시' 내 곁에 묶어 묶어둘 일인가? 그렇지 않으면 왜 좋아하는데?라는 질문은 어처구니가 없다. 사랑은 지킴이 아니라 함(doing)이다. 그렇지 않나? 내가 그대를 사랑하고, 그대가 나를 사랑'한다'. 내가 그대의 사랑을 받고, 그대가 나의 사랑을 '받는다'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사랑은 붙잡음이 아니라 상대를 내 곁에 묶어둠이 아닐 것이다. 내가 상대를 사랑한다고 내게 그런 권리가 생기지 않는다. 만일, 내가 상대를 사랑하고, 상대는 나로 인해 행복에 젖은 적이 없다면, 이것은 사랑인가? 나는 상대에게 무엇을 했나? 귀중하고 소중한,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에 혼자 들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 같은 캐릭터가 며칠 후 뇌종양으로 생을 마감하는 우체부 앞에 나타난다. 나가이 아키라 감독의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은 이렇게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세상에 어떤 것을 한 가지 없애면, 네가 하루를 더 살 수 있어.

     


    어머니와의 추억이 있는 고양이가 없어졌다. 비가 쏟아지는 날 온 동네를 찾아 헤맨다. 지쳐 돌아온 우체부 앞에 어머니의 편지와 함께 없어졌던 두 번째 고양이가 있었다. 

     



    세상에 쓸모 없는 것은 없고, 그에 얽힌 추억이 소중하다. 전화가 사라지고 좋아했던 그녀와 만남이 없던 일이 됐다. 영화가 사라지고, 그의 마지막 영화를 고르다 무력함에 빠진 친구가 친구였던 적도 없는 이가 됐다. 시계가 사라지고, 아버지가 운영하던 시계점이 없어진다. 

     



    우리 주위의 물건에는 추억이 묻어 있다. 사랑한 그녀, 영화를 추천한 친구, 아버지의 시계점, 알레르기에도 고양이를 함께 키우던 어머니. 그런 추억들은 마치 주위에 떠도는 산소 같다. 소중하지만 소중함을 잊은 존재. 언제나 내 주위에 있던, 어쩌면 흔한 존재. 그런 존재들과 그 이야기와 헤어지면 눈물이 흐르고 마음이 아프다. 시간이 약이라고 눈물은 마르고 마음은 아프지 않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자주 들으면 싫증이 난다. 

     



    비밀 봉투를 뒤집어 쓰고 입구를 조이면 곧이어 숨을 쉴 수 없어 괴로워진다. 그런 경험이 있나? 좋아서 만난 상대였다. 상대는 나를 이해하기 위해 매일 노력한다. 그 노력의 길에 실수도 있다. 하루하루 나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상대의 실수에 치를 떨 필요가 있을까? 상대의 실수가 싫어질 때, 내가 상대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범한 실수를 자각할 수 있을까? 나는 실수, 너는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왜 상대가 실수를 했는지 알 수 있을까? 혹시, 소중함을 잃은 공기를 대하듯, 상대가 흔해져 버린 것인가?

     



    매일 상대에 주목하고, 상대가 하는 행동이 나에게 어떤 긍정적 영향을 주는지 알아가는 생활은 불가능할까? 곁에 없으면 안 될 것 같던 감정은 '오늘도 만난 상대'가 된다. 약속 시간과 장소를 확인하는 전화에 "내가 바보야?"라고 내뱉지 말고, "고마워, 챙겨줘서."라고 말할 수 없을까?  

    결혼과 관련된 말 중에 '의무 방어전'이라는 말이 있었다. 둘의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에 흥미가 떨어졌다. 가슴도 뛰지 않고 긴장에 식은땀이 나던 기억은 가물거린다. 하긴 해야겠는데 억지로 하게 된다. 처음엔 출근길 키스가 너무 진해서 난리였는데, 지금은 입술만 겨우 부딪힌다. 퇴근 키스가 씻지 않고 침대로 내달리는 이유가 됐는데, 이젠 술 냄새난다고 내가 먼저 피한다. 이럴 수 있는가? 상대는 얼마나 서운할까? 둘 사이에 달라진 점은 시간이 흐른 것 외에는 없는데, 시간이 서로의 애정을 가져가 버린 것일까? 

    우리는 사랑을 지킬 수 없는 것일까? '저 정도면 괜찮다' 생각하고 사귈 자격을 준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이니 이런 모습이어야 해'하며 마치 절대 진리를 이야기하듯, 옷차림을 바꾸고 굵은 허리를 줄이라고 잔소리를 한다. 그러다가 상대가 힘들어하면 "날 사랑하지 않아?"라고 협박한다. 

    "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야 행복해"라고 뻔뻔하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야 행복할 수 있다는 결론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자존감을 세우고 나 자신을 지켜가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일까? 상대를 어떤 존재로 여기고 있는 것일까?

    사랑은 지킴이 아니다. 사랑은 함이다. 연애는 서로에게 조건이나 대가 없이 헌신하는 사랑이 서로를 향해 흘러가는 모습이다. 교역이 아니다. 내가 50만큼 했으니 적어도 너는 50만큼 해야 하는 행위가 아니다. 누군가 사랑을 알려줄 사람이 없을까? 

    섣부른 선택이 후회를 낳는다. 헤어지는 이유는 서로에게 있다. 나로 인해 상대가 행복에 젖은 횟수가 너무 적어서 그렇다. 사랑은 지키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주는 것이다. 지금은 와닿지 않을지 몰라도, 시간이 흐른 후,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목격하게 된다면, 천천히 알게 될 것이다. 나로서는, 그런 기회를 만나길 기원하는 것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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