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 그 어렵고도 힘든 길 - 개그의 활용과 효과

2018. 2. 27. 12:53지난 글

728x90
반응형



이준익 감독의 영화 ‘황산벌’은 작품 속 개그 요소의 위치와 역할을 잘 살펴볼 수 있는 한국 작품이다. 


황산벌 전투는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을 저지하기 위해, 백제의 계백 장군이 처와 자식을 죽이고 결의를 다져 5천의 결사대와 장렬한 죽음을 맞이한 처절한 전투이다. 영화는 황산벌 전투의 전후 상황을 단계적으로 보여준다. 


가장 주목을 받은 부분은 사투리의 사용이다. 영화 초반, 고구려, 백제, 신라, 그리고 당나라의 왕이 모여 이야기를 하는 장면, 백제 의자왕과 귀족들 간의 언쟁, 백제와 신라 병사들의 응원전과 욕 컴피티션, 신라를 염탐하기 위해 신라 사투리를 연습하는 백제 간첩, 그리고 압권은 백제 계백 장군과 그 부인의 언쟁이다. 



상황은 전쟁으로 치닫고 마침내 백제와 신라군이 황산벌에서 대치한다. 치열한 첩보전과 응원전이 보는 사람이 웃음을 참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영화는 캐주얼한 개그에서 심각한 몰살 전으로 진행이 된다. 


이 영화에서 사용된 개그는 웃기는 개그가 아니라 ‘심각한’ 개그다. 등장인물들은 전쟁에 이기기 위해 심각한 노력을 한다.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욕쟁이 특공대를 상대 진영에 보내 도발을 한다. 상대를 흥분시켜 달려 나오게 하여 전열을 흐트러뜨리려 열과 성을 다한다. 이러한 심각한 행동들에 관객들은 웃음으로 답한다. 백제 벌교의 욕이 특산물처럼 등장해 신라 욕쟁이 특공대를 말려 버린다. 


그런 웃음은 영화 마지막의 심각한 상황을 증폭시킨다. 웃음과 슬픔은 대비되는 감정이자 행동일 것인데, 어떻게 전쟁의 심각함을 웃음이 증폭시킬 수 있을까? 


우리는 아이스 브레이크(ice break)라는 말을 들은 경험이 있다. 확실히 있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을 빼지 말라.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딱딱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과정이다. 방송의 경우, 녹화에 들어가기 전에 개그맨 혹은 스텝이 나와 관객들의 분위기를 푸는 과정을 거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더욱이 이 영화의 배우들은 관록 있는 배우들이다. 오지명, 정진영 등 진지한 이미지의 배우들이다. 이들이 사투리를 하고 위아래 없이 막 나가는 대화 방식으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의견을 침을 튀기며 이야기한다. 상대를 설득하기도 한다. 작품 초반뿐만 아니라 중간중간에도 개그 요소들이 등장해 작품에 대한 집중력을 높인다. 


이러한 작품 구성은 일본 만화에서 자주 만난다. 장르가 개그 만화로 분류되는 작품 외에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시티 헌터’, ‘슬램 덩크’, ‘원피스’, ‘은수저’, ‘바라카몬’ 등 셀 수 없이 많다. ‘시티 헌터’는 용병 출신의 주인공이 경찰이 해결할 수 없는 (물론 불법적 경로이지만) 일을 해결하는 스토리다. 변태 같은 주인공과 그것을 막으려는 파트너. 그러나 인간적인, 지극히 인간적인 주인공은 감동을 받을 만한 이유가 아니면 일을 수락하지 않는다(물론, 남성 의뢰자의 의뢰는 사전에 차단하려고 한다). 다른 작품들도 많지만 읽는 중간중간 푹푹 터지는 작품은 ‘바라카몬’이다.  


서예 명인의 아들인 주인공은 한 공모전에서 2등을 한다. 그리고 ‘공모전을 위한 작품’, ‘교과서적인 작품’ 등의 잔인한 평가를 듣고 머리 허연 협회장의 턱을 주먹으로 날린다. 그 죄로 아버지에게 시골로의 ‘귀양’을 명 받는다. 어려서부터 친구도 없이 서예만 한, 도시 생활 물이 몸에서 뚝뚝 떨어지는 주인공이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시골로 내려간다. 빌린 집은 동네 아이들의 ‘본부’로 사용된다. 그 안에서 주인공은 함께 사는 세계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이 던지는 한 마디 한 마디의 ‘심각한’ 개그에 푹푹 웃음이 터진다. 황당한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 속에서 주인공은 판에 박힌 서예에서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다. 이 작품은 인간 성장의 드라마다. 


사실, 개그 요소를 다 빼도 스토리는 진행된다. 인물들의 속을 분석하고 상황을 묘사하며 분위기를 목표한 지점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그러나 개그 요소는 작품 속 이야기를 노골노골해진 귀로 듣게 한다. 처음 만나는 이야기에 긴장한 속을 풀어 느근한 마음으로 작품을 마주하게 한다. 


개그를 만들어 내는 데는 내공이 필요하다. 개그도 관록이 있어야 이야기 중간중간에 필요한 요소에 배치할 수 있다. 만화 ‘바쿠만’은 중학생 신인 만화가 듀엣의 이야기다. 그들이 그린 작품이 출판사의 눈에 들고, 그들은 주간 잡지에 만화를 게재한다. 수없이 퇴짜를 맞고 다시 그린다. 온갖 각오를 하고 다시 작품을 그려 연재에 도전한다. 이야기 자체에는 개그가 거의 없지만, 이 신인 듀엣은 개그 만화에 도전을 한다. 다양한 문구, 표정, 유행어를 만들어내는데 재능도 없는 스토리 작가는 날밤을 샌다. 


작품을 하나 쓴다는 것이 힘든 일인데, 그 속에 아이스 브레이크 역할의 개그와 윤활유 같은 개그를 집어넣는 것은 집필을 더 어렵게 한다. 누군가는 물 흐르듯 쓴 말이 개그가 된다. 누군가는 평소에 사용하는 말투나 행동을 넣어 개그로 만든다.  


인생도 이와 같은 것은 아닐까? 매 순간 진지하지 않으면 실하게 삶을 사는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농담이나 찍찍하는 사람들은 가벼워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상황에 맞는 한 마디가 힘든 일상에서 웃음을 준다는 것을. 너무 힘들어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순간, 속 시원히 한숨을 돌리게 한다는 것을. 그런 일상의 개그를 던지는 사람이 특별히 재능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항상 우리 옆에서 함께 땀을 흘리는 존재라는 것을. 


앞으로는 ‘닥터 슬럼프’, ‘요츠바랑’ 등의 만화 장르를 좀 더 보아야겠다. 본다고 늘겠냐만은 그래도...


*이미지는 여기서: Photo by Victoria Palacios on Unsplash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