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1월 15일, 중간

2019. 11. 15. 14:06지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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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ing, winter, November, musicing, coffee

 

거실 겸 주방의 실내에 캡슐 커피 향이 채워진다. 드리핑 할 때보다는 옅지만 지금 원두를 그라이딩 한 듯 머신에서 또르르 떨어지는 커피에서 향이 올라온다.

 

어제부터 비가 내린다. ‘눈이지 않을까’ 싶었지만 아직은 가을의, 어쩌면 여름의 집착이 남은 것인지도 모른다. 소리 그대로 ‘주적주적’ 내린다. 주위는 온통 젖었고 차가 지나갈 때 도로와 빗물과 휠의 마찰음이 들린다. 건조하고 마른 소리가 아니라 축축하고 물기 가득한 소리다.

 

스마트 폰에게 자유를 주기로 했다. 이젠 제조사 지원도 끊기고 화장실에서 추락해 귀퉁이가 찌그러지고 액정 유리는 군데군데 떨어져 나간 스마트 패드. 블루투스 스피커나 이어폰이 아니면 액정이 깨진 곳이 진동해 괴상한 소리가 난다. 그래도, 최신 버전을 힘겹게 받아들이고 있으면서도,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의 ‘질’은 부드럽다. 오래된 ‘형’이 음악 역할을 수행하니 동생 스마트 폰은 여유롭게 밥을 먹고 있다. 

 

아름아름 모아 보관함에 넣어둔 음악을 ‘무작위 형식(random mode)’로 틀었다. 잘 이어진다. 분위기를 깨지 않는다. 어쩌면 날씨를 봤는지 그렇게 빠르지도 그렇게 파괴적이지도 않다. 적절히 옅은 커피 향과 손을 잡고 실내를 돌아다닌다. 곧 커피 향은 흩어져 존재가 공기 중에 숨겨지겠지만, 이미 내 후각 신경에 익숙해져 조금도 느낄 수 없지만, 분명 둘은 정답게 손을 잡고 실내를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커피와 음악, 베프(best friendship) 아닌가?

 

11월이다. 벌써 3년째인가? 종이 플래너를 사지 않은 것이. 사놓고 방치한 것은, 아니 가끔은 찾았던 것은 이미 오래 됐다. 비싼 값을 치루고 종이 플래너를 사면 ‘아, 디지털로 기록하면 검색도 가능한데’ 싶고, 디지털에 자리를 잡으면 ‘아, 사각거리는 만년필, 그리워’ 싶다. 이런 내 모습을 매년 연말 돌아보면 미친 것 같다. 정상이 아니지 싶다. 마음을 못 정하니 방황하게 되고 방황을 오래하니 쉽게 놓을 수 없다. 시간이 갈수록 싫은 점이 쌓이고 좋은 점이 휘발되는데도 놓지 못하는 연인 같다. 아니 정인 같다. 타인의 눈엔 ‘저 둘, 장난하는 거지’ 싶을 것이다. 돌아서면 좋아하는 마음이 일어서고 마주 보면 단점만 보이는 연인. 그렇다고 서로 등을 붙이고 살 수는 없지 않나? 이젠 둘 다 행복을 찾아 떠나야 하지 않나? 나에게 종이와 디지털 플래너는 그런 존재다. 종이라고 단아한 고전 미인이 아니고 디지털이라고 현대적이고 활달한 미인이 아닌데. 더 매력적인 사람들이 나에게 더 맞는 사람 (여기서는 방식, 방법)이 있을 텐데 난 7년 넘게 동일한 종류, 브랜드의 플래너를 구입했다. 그 소프트웨어 버전도 설치해 사용해 보고 실망하고 삭제했다. 미적 디자인이 된 속지도 나온다. 수입 폭은 넓지 않아 본사 사이트를 보고 눈독만 들인다. 그 플래너의 원리가 적인, 현대의 논어, 대학, 중용 같은 자기 개발서는 아예 구입을 해서 7번 넘게 보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도 했고 관심 분야만 골라서 읽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자기 개발 서적을 읽기 전보다 발전했나 하면, 그랬다가 만 것 같다. 어쩌면 ‘내 옷’이 아닌데 좋아서 붙어 있었던 것 같다. 이점도 있었지만 불편함도 컸었다. 대신 내가 변한 것은 사실이다. 뭔가 조금씩 ‘내 방법’이 머릿속에 자라고 있다. 나를 좀 더 알게 됐다. 알게 되면 왜 실망이 먼저 오는 걸까? 책 ‘시크릿’이나 ‘트랜서핑’의 주장대로, 긍정적인 부분을 찾고 행복한 순간만 기억해서 긍정적 에너지를 발해 좋은 일들만 생기게 해야 했을 텐데. 단점을 알았다고 그것을 고치긴 하지만 그것은 현상 유지의 방법이었다. 적극적으로 장점을 찾고 그것을 극대화 하지 못했던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아, 커피 쓰다.

 

음악에서 그런다. ‘다시 한 번 안아 봐도 될까요?’ 

 

“시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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