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5. 20. 11:43ㆍ지난 글
코로나 사태가 벌어진 후, 외신은 자가 격리에 들어간 사람들에게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소개하는 기사를 많이 보고했다. 주로 영화, 음악 플레이리스트(재생 목록)이다. 각종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즐길 수 있는 대중 문화 산물들이 리스트에 올랐다. 명작도 있고 최신 등록 작품도 있다. 홈 트레이닝을 다룬 기사도 눈에 띈다. 건강과 관련해, 자가 격리가 주는 고립감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론도 주요 기사로 다루었다.
자가 격리에 따른 고립감은 ‘매일 일정하게 진행할 일상을 정하라’, ‘일광욕을 하라’,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유지하면서 공원이나 산책길을 걸어라’ 등 코로나 사태 전 일상에서 형성된 생활 리듬을 유지하라는 것이 핵심 메시지다. 스스로 선택하면 고독, 타인에 의하면 외로움이란 말이 있다. 우리는 안전을 위해 스스로 격리를 선택했다. 재택 근무로 전환한 기업이 많았다. 이는 타의에 의한 격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의 반 타의 반의 격리 라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자가 격리는 반드시 고립감을 수반하지 않는다. 대인 관계에 취약했던 사람들은 일상과 업무를 병행하는데 어려움을 겪지만 오히려 대인 관계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안을 얻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일상의 리듬이 바뀌면서 마음의 리듬이 변경될 때, 그리고 일상을 침범한 침략자를 피하여 외출이 두려워진 때, 우리는 고립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스트레스를 주는 타인 말고 친화를 영위하게 한 대인 관계 역시 멀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스턴 글로브의 기사에서 언급된 대로, 내가 예방 접종을 했을 때 발생되는 이점에는 자신의 건강도 있지만, 이웃에게, 특히 이웃 아이들에게 전염병을 옮기지 않는 이점도 존재한다. 예방 접종이 되지 않는 전염병 발발 시 집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제한 점을 갖게 된다.
이러한 기사를 참고하지 않아도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유지하는 방법을 생각할 것이다. 이런 속성은 어쩌면 동물의 속성일 수 있다. 안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안전을 확보하려는 본능. 생활의 리듬이 깨어지고 이로 인해 마음을 갈아 먹는 상태에서 자신을 유지하기 위한 본능. 우리는 분명 전문가의 조언이 없더라도 스스로 방법론을 수립했을 것이다.
그런데 다시 변화 상황이 도래했다. 고등학교 3학년부터 개학이 시작됐다. 교육부는 비상근무체제에 들어간다고 한다. 부모 된 입장에서 교육부를 믿지 못하는 마음보다 ‘아무도 아이들의 전염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에 신경이 곤두선다. 선택 등교제의 확대 실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부모의 마음은 자신의 안전에서 아이들의 안전으로 방향을 틀었고 자료를 찾거나 스스로 방법을 찾고 있다. 아이들의 전염 여부를 교육부가 장담할 수 없듯, 전문가의 의견도 스스로 찾은 방법도 무엇 하나 장담할 수 없는 ‘의견’일 뿐이라는 점이 불안을 야기한다.
이제 ‘after’의 시간이다. 기댈 곳이 없이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아이들은 답답해하지만 강제로라도 집에 가두고 싶고, 등교부터 풀릴 출퇴근 재개를 강하게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다. 자연 재해를 직면하여 기댈 곳이 없다고 판단을 내렸을 때 우리가 느끼는 고립감 이상의 감각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세계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을 만큼 잘 해왔다. ‘Good before’였을 수 있다. 이제 ‘Good after’를 원한다. 인간이자 부모인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는 마치 암이 온 몸으로 전이되고, 아니 암이 생긴 어머님을 앞에 두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그 시절과 너무나 유사해서 슬프다. 인간이 신이 존재하길 바라는 마음이 왜 생성되는지 너무도 아프게 이해하고 있다.
'지난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편리미엄 (0) | 2020.05.21 |
---|---|
매일 행복할 나 I: TO-BE Image (0) | 2020.05.20 |
행거 (0) | 2020.05.20 |
숫자의 마법 (0) | 2020.05.18 |
코로나 사태로 살펴본 전 세계 식량 공급 상황 (1) | 2020.05.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