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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우리는 ‘셜록’에 열광하는가?
    지난 글 2017. 8. 10.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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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셜록, 코난, 김전일


    ‘입증’의 기술이 필요한 순간은 너무도 많다. 내 말이 옳음을 증명할 순간, 상대가 틀렸다고 입증할 순간들이 시시각각 눈앞에 펼쳐진다.



    우리는 일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입증, 증명의 굴레를 쓰게 되는 지도 모른다. 그것은 우리가 속한 일의 세계를 경쟁의 공기가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경쟁한다. 쉬지 않고 투쟁한다. 자기 자신을 이겨 스스로 세운 계획을 완수하기 위해, 맡겨진 일에서 성과를 내도록 반대 의견을 이겨내기 위해 항상 투쟁한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승자의 왕관을 쓰진 못한다.



    많은 시간을 그 일에 쏟아부어 조직 내에서 나만큼 그 일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회의에서 내게 던져지는 반대 의견이 틀렸음을 증명해내지 못한다. 그것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입증 혹은 증명의 기술이 부족하거나, 입증하는데 필요한 정보나 지식이 부족해서이다. 



    셜록은, 코난은, 그리고 김전일은, 사건 현장에서 머리카락만큼 작은 흔적도 결코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건에 관계된 사람들의 연쇄 형태를 주도면밀하게 살펴본다. 그리고 마치 자신이 저지른 행위인 것처럼 발생된 사건의 진행 과정을 추리해낸다. 물론, 극영화가 갖는 속도감 때문에, 혹은 천재 탐정으로 설정된 캐릭터 때문에, 그들은 우리가 보기에 너무도 쉽게 그 스토리를 간파해 낸다. 왜 그가 혹은 그녀가 이런 행위를 했을까를 마치 퍼즐을 맞춰가듯, 수집한 정보들을 하나둘 맞춰 하나의 진실을 밝혀낸다.



    우리는 어떠한가? 적어도 상대가 왜 반대를 하는지를, 그 진실을 밝혀내지도 못하고, 분노에 치를 떨며, 흥분된 성토만을 남기고 패배자가 되어 회의장에서 나온다. 상사의 지시가 잘못된 것은 명확한데 그것을 논리적으로 이야기하지도 못한다. 덕분에 상사의 잘못된 지시의 오류를, 내가 일을 잘못 추진한 오류로 둔갑시키고야 만다. 결국 죄인은 저지르지도 않은 내가 되는 것이다.



    위 서술의 표현이 너무 극단적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무슨 의미인지는 전달됐을 것이다. 우리가 탐정이 될 필요는 없지만, 우리가 성실하게 진행한 일의 진실을 밝혀낼 역량은 갖출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수사하는 방법이라든가, 조사하는 방법이라든가, 논리학이라든가를 배우고 익힐 필요가 있을까? 여기서 우리는 성실하게 진행한 일에 타인이 공격할 빈틈이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그 일이 왜 발생했는지, 어떤 경로를 통해 내게 도달했는지, 지시한 사람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 빈틈 말이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이들 중에는, 일을 그렇게나 어렵고 힘들게 시작해야 하느냐며 입이 새 부리만큼 삐죽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일의 성공률을 높이고 진행 속도를 높이는 첩경이 됨은 아는 사람은 알고 있다. 그리고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과정에 익숙해서, 처음 시도하는 사람보다 실패할 확률도 적고 속도감 있게 처리해 낸다.



    누군가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면,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에 익숙한지를 알 수 있다. 소위 ‘능숙’이라는 단어는, 그러한 기법들과 기술들에 대한, 일상적인 연습에 게으르지 않은 사람들이 받는 왕관 같은 것이므로.



    예를 들어 보자. 상사가 어느 날 내가 관여하지 않은 작업에 대한 진행 보고서를 작성해 오라고, 마감 시한과 함께 일을 던지고, ‘내일 보여줘’라는 망언과 함께 퇴근한 사건이 벌어졌다. 그 작업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은 상당수 퇴근한 상태이다. 억울하다. 저 상사 미친 거 아닌가? 왜 이걸 나에게 시키나?라고 분통을 터뜨리며 2시간을 허송세월 하는 것보다 먼저 전화를 들어 그 일의 중간 관리자 혹은 담당자에게 연락을 한다. ‘안됐네. 왜 그 일을 니가 하고 있니?’라는 위로는 짧게 받고, 그 일에 대해 질의를 시작한다. 물론 전화하기 전에 진행 보고서에 필요한 항목들은 정리해 두는 것이 사전 작업이다. 전화 안 받는 사람, 술 먹고 있어서 대답하기 곤란한 사람 등 온갖 장애물들이 장마 비처럼 쏟아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능률적으로 질의를 진행한다. 그리고 주간 보고서와 팀 메일을 검색해 본다. 이렇게 정보를 수집하다 보면, 왜 나에게 이 일이 맡겨졌는지의 윤곽을 알 수 있다. 정확하지 않고 안개가 끼인 듯 희미하긴 하겠지만. 



    그리고 상사의 평소 결재 습관을 생각해 본다. 상사도 내가 그 팀의 일원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내게 이 일을 맡긴 것은, 원래 자기가 써야 할 일을 내게 맡긴 것이다. 이 시점에서 주의할 점은, 분노를 폭발시키지 않는 것이다. 얼른 밖으로 나가 매연이 가득한 공기 속에서라도 하늘을 보며 심호흡을 해 마음을 안정시킨다. 그리고 일반적인 진행 보고서의 양식을 기초로 조사한 내용으로 초안을 만든다. 아마 여기까지 진행하면 6시 퇴근 시간 후 3시간 정도는 썼을 것이다. 허리도 아프고, 어제도 철야를 해서 어깨도 결리는 부족한 몸을 다독이며 핵심 위주로 초안을 작성한다. 그리고 잠시 눈을 들어 숨을 크게 들이쉰다. 평소의 팀장이라면, 이 정도의 내용으로는 부족하다며 타박을 할 것이다. 그러나 보충할 시간은 줄 것이다. 여기까지 패턴 판단이 완료되면 작성된 내용이 물 흐르듯 읽어 나갈 수 있게 세밀한 퇴고를 진행한다. 그럼 한 11시 정도가 될 것이다. 우선 팀장에게 메일을 보낸다.



    보고 메일을 보낼 때 간단하게 과정을 2줄 정도로 요약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누구누구에게 문의를 하고 팀 메일 등 접근 가능한 정보를 취합해 이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팀장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럼 ‘됐어!’ 아니면 ‘이게 뭐야?!’ 중 하나의 목소리가 들릴 것이다. 집에서도 일을 하는 (이런 지옥 같은 경우는 제발 없길 바라지만) 팀장 같으면 회사 문을 나서는 내 스마트폰에 전화를 걸 것이다.



    그럼 화를 내지 말자. 가만히 듣는다. 그리고 쓸데없는 내용은 감정과 함께 삭제하고 무엇이 더 필요한 지를 골라낸다. 내일 아침 담당자들이 출근한 이후 물어서 보완할 수 있는 내용인지, 지금 당장 연락을 취해 조사해야 할 것인지 판단하고 그 판단을 믿고 진행한다.



    이렇게 일을 열심히 했는데, 팀 회의에서 팀장이 공개적으로 나를 질책한다. 진행 보고서가 똥이라고! 여기서 우리는 논리적 설명자가 되어야 한다. 이 일을 나에게 맡긴 자체가 잘못된다는 논조 말고, 관여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어떤 과정으로 이 일의 진행 상황을 조사했는지 핵심만 추려서 간략하게 답변할 여유를 가져야 한다.



    쉽지 않은 일임에는 틀림없다. ‘팀장, 니가 죄인이야!’라며 윗 사람을 질책하지 않으면서, 얼마나 내가 이 일에 제대로 했는지를 어필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입증과 증명의 기술을 우리 삶의 유지 도구로 사용할 수 있게끔 준비를 해야 한다.



    심호흡이 안되면 다른 방법을 써서라도 일에서 감정을 배제하는데 익숙해져야 한다. 자신의 성실성을 입증할 때 사용할 논리적 언변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논리적 언변을 구성하기 위해 정보 취득에도 열을 쏟아야 한다. 그래서 지지 않는 ‘나’로서 성장해야 한다.



    셜록의 이야기들도, 김전일의 이야기들도, 코난의 이야기들도, 이러한 기술을 문제집 해답처럼 보여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시뮬레이션을 하기엔 좋은 도구가 된다. 지지 말자.



    현실에서는 항상 억울한 죄인이어서, ‘셜록’을 보며 그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이 되지 말고, 부족하지만 연습과 관심을 통해 우리의 성실성을 제대로 입증하는 사람이 되어 보자.



    Photo by Hans-Peter Gaust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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