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Good bye, Solo
    지난 글 2017. 7. 11. 13:11
    728x90
    반응형
    SMALL

    *이시다 이라 / 슬로 굿바이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을 좋아해 본 적이 있나? 금단의 대상을 좋아해 본 적이 있나? 사회적으로, 아니 가족이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을 좋아해 본 적이 있나? 만난 적이 있나?


    이 소설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The history of 좋아함’을 보여준다.


    콜걸이 좋아져 버렸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왜 저 인간은 내가 싱글로 있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하는가, 귀찮겠다는 생각은 못하나?


    최근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30%를 넘었다. 이런 통계가 나온 지도 꽤 됐다. 사귈 수 있는 사람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 비록, 거실 겸 부엌에 방 하나, 화장실 하나라도 둘이 지내기엔 부족함이 없다. 식탁에도 의자는 2개 정도는 있을 것이니까.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가족 안에 있나? 사회 속에 있나? 아니, 이런 거창한 말 말고, ‘남의 눈’에 묶여 있나? 언제나 사랑의 원론 위를 밟고 있다는 듯 연기해야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는 사람은, 비록 나는 할 수 없어도, 선망의 대상이 된다. 당신은 선망을 하는 사람, 즉 그 타인인가?


    우리는 도덕적 인간으로 살라는 강요를 받고 있다. 그래서 모두, 적어도 타인의 눈앞에서는, 도덕적 인간, 사회적 질서를 지키는 인간, 결코 소위 ‘인간의 틀’을 벗지 않는 인간으로 보이기 위해 많은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한다. 엔지니어형 인간처럼, 우직해서는 그럴 수 없다. 내 마음이 너무 쉽게 들키게 되니까.

    매니저형 인간처럼, 눈치가 빨라야 부족한 정보를 메울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살면 울화통이 터진다. 답답하다. 물론, 이런 감정의 주어가 ‘모든 사람’ 혹은 ‘대부분의 사람’은 아니다. 우리는 주위에서 이렇게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정도라 여겨, 이렇게 사는 것을 편하게 느끼는 사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사랑은 아름답고 고귀한 감정이라, 그 어떤 사랑이라도, 아니 여기서는 ‘좋아함’이라고 해야겠지만, 존중되어야 한다는 의견들이 장난 아니게 많은데. 왜 그 사회의 틀은 그렇게도 쉽게 그 감정의 가치를 낮춰 헌신짝처럼 취급하나? 그래서 왜 숨기게 만드나?


    누구나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서 나온 행태를 존중받길 원한다. 아름답고 고귀한 감정이니까. 그러니 잘못이 아니니까.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을, 잘 드러내지 않거나 사회의 틀에 맞겠다 싶을 때, ‘내 남자 혹은 여자 친구를 소개할게!’라고 말한다.

    그러니 콜걸을 소개하려면 수백만 년은 걸리지 않을까?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직업으로 전환하고, 전환된 직업에 맞는 생활에 적응된 후, 몇 번의 테스트를 거쳐, 함께 길을 걷다 누굴 만나도 움츠려 듦이 없을 때.


    그런데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세상엔 남자와 여자, 단둘만 존재하는 듯, 서로에게 집중하고 있다.

    당연하다. 사회적 틀을 겁내는 우리도(전부나 대부분이 아님) 밝히기 전에는 상대에게만 집중한다. 당연하지 않겠나?


    그래서 수백만 년이 걸릴 우려가 보이면 고민하기 시작한다. 좋아함의 감정으로 터지려는 둑을 받쳐 본다. 물살이 잠잠해지고, 둑이 무너질 염려가 없어지면, 좋아하는 감정은 당당한 감정이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일상의 어두운 면의 넓이는 확장된다.


    사실, 이 책은 이런 고민을 할 사이도 없이 끝난다. 단편 소설들을 모아 놓은 소설집이다. 그리고, 각각의 에피소드가 막장 드라마가 주는, 깜짝깜짝 놀랄 일도 없다. 참 잔잔히 흘러 나아간다. 그리고 대상들의 직업이 무엇이든, ‘새롭다’ 이상은 없다.

    그리고 이야기의 진행 속도는 빠른 편이다. 마치, 오후 3시 혹은 4시, 카페 창밖에 보이는 사람들이 걸어가는 속도 정도.

    마음도 편하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고민을 사서 하고 있는 걸까? 


    ‘일본’ 소설이니까, 그래서 우리보다 자유로운 문화니까, 아니면 다른 문화니까 이런 스토리도 가능하다고 생각해 버리긴 싫어서 일 것이다.

    조금 더 자유롭고 싶어서였다. 기준이 남의 눈에 있지 않고 내 마음에 있길. 그래서 그 기준에 따라 액셀러레이터도 브레이크도 내 스스로 밟고 싶어서였다.



    Photo by Samuel Zeller on Unsplash

    반응형
    LIST
도시 생활 Urbani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