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 앞의 미래를 알아내는 방법

2017. 12. 18. 16:05지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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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내 상상이 틀렸다. 상상을 한 것은 내 머리, 결과를 확인한 것은 내 혀다.


곡물빵 슬라이스에 크림치즈를 바르고, 샌드위치용 햄과 고다 치즈를 얹은 후, 덮개가 되는 빵에도 크림치즈를 발랐다. 이 과정이 상상했던 과정. 하지만 나의 뇌는 상당히 '제한' 혹은 '경계'가 없어서, 샌드위치 하나를 다 만들고 나자 새로운 생각을 떠올렸다.


마트에서 곡물빵 3종을 할인판매할 때 이를 구입해서, 슬라이스 4장, 즉 2 쌍을 위생 봉지 하나에 담는 형태로 포장해서 냉동실에 보관했었다. 그러니 샌드위치 하나를 만들면 2장의 곡물빵 슬라이스가 남는다. 그 한쪽에, 뉴욕에서 반해서 국내 판매가 시작됐을 때 떨어지지 않게 구입하는 피넛 버터를 바르고, 햄 한 장만 올린 후 (여기에 치즈를 더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 것도 바르지 않은 덮개 빵을 덮어 두 번째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점심 식사다. 그리고 한 세트의 샌드위치가 모험처럼 접시에 놓여 있다. 물 150ml를 전기 주전자에 붓고 끓는 소리가 나자마자 스위치 오프(이 상태의 물 온도에서 차 종류는 가장 맛이 좋다고 한다). 붉은 색이 그라데이션 되어 있는 머그 잔에 코코아 가루를 한 봉 넣고 물을 붓는다. 천천히 가루가 다 녹을 때까지 차 수저로 젓는다. 


언제나 모험이 먼저이고, 익숙한 것은 나중이다. 물론 크림치즈 샌드위치는 내게 처음이지만, 레스토랑에서의 경험들이 이 조합을 무난한 것으로 판단하게 했다. 


코코아로 입을 적시지도 않고 피넛 버터 샌드위치를 크게 베어 문다. 멋진 맛이 났다. 피넛 버터의 고소함과 지방 맛, 곡물빵의 고소함에 거친 질감, 거기에 짭쪼롬한 햄 슬라이스의 맛은 훌륭한 조합이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이 판단은 절대적인 결과를 내놓는 평가가 아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내 혀로 확인한 맛이다.


코코아는 유명 초콜릿 브랜드의 제품이다. 초콜릿 맛이 우유 맛을 지배하고 있는 맛이다. 그러나 그 초콜릿 맛은 샌드위치와 어울려 놀기를 원했다. 결코 빵, 피넛 버터, 그리고 햄의 어울림에 훼방 놓지 않았다. 더구나 모험이 끝나고 한숨 돌리며 마신 코코아는 훌륭한 마무리 투수였다. 


크림치즈 샌드위치는 핫 코코아가 혀 위를 빈틈 없이 덮고 있을 때 만났다. 이번에도 코코아는 새로 다가온 크림치즈 샌드위치를 환영해 주었다. 하지만, 코코아가 혀의 여백을 없애 버린 환경에서, 어쩌면 이 상황은 두 샌드위치에게는 공평한 환경일 것이다. 두 샌드위치의 맛 비교는 방해받지 않았다.


'1위는 당연 크림치즈고 2위는 피넛 버터일거야'라는 초기의 상상은 변명할 틈도 없이 깨졌다.


이 글을 시작한 질문을 다시 확인해 보면, '왜 크림치즈 샌드위치가 더 맛있을 것이라 상상했는가?'


근거로는 레스토랑 등에서 크림 치즈 샌드위치를 먹어본 경험을 내세웠지만, 그 경험이라는 것은 곡물빵에 바른 크림 치즈의 경험이었다. 따라서 이전의 경험을 확장하여 미래의 결과를 판단한 것이다. 반면, 2위라 생각한 이유는, 피넛 버터와 햄을 조합해 먹어 본 경험도, 피넛 버터와 곡물빵을 조합한 적도 없었다는 것이 그 근거다. 


장황하게 길어져 버린, 어느 날의 점심 식사 이야기지만, 적어도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내 판단의 방식, 판단의 근거는 충분히 이야기 했을 것이다. 당신은 어떤 방식이었을까? 만일, 20년 이상 우리 집 주방에서 쭉 요리를 해왔던 내가, 눈 앞의 재료를 머리 속으로 조합해서 정확한 맛을 설계할 수 있었다면, 나는 '피넛버터를 바른 햄 곡물빵 샌드위치'의 손을 들어 주었을까?


나는 그런 0.0001%의 상위 그룹에는 속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한 조리에 대해 가족들이 망설임 없이 수저를 들고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할 정도일 뿐이다. 여러 번 반복하면, 일은 익숙해지고, 맛은 그 동안 살펴 온 사람들의 표정 '데이터'로 조정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경험 없는 맛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어쩌면 이런 내 모습은, 1초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범인의 그것이라서, 나는 결코 남보다 뒤떨어진 사람은 아니다 라고 단언할 수 있다.


이런 능력치는 아쉽고도 아쉽다. 조리 과정 중에 여러 번 맛을 보고 조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니 번거롭다. 각각의 재료 맛은 기억이 난다. 그러나 조합은 아직이다. 혹시 이것은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훈련되지 않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어울림에 대한 판단력은 과연 훈련을 통해 향상될 수 있을까? 조화 여부를 판단할 능력치는 과연 훈련을 통해 높아질 수 있을까?


그런데, 그 0.0001%의 존재에 대해서 의문을 가진다. 떼를 써서 나의 침체된 기분을 해소해 보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 '0.0001%'라고 내가 판단한 사람들의 어울림 혹은 조화 결과 예상은 난 눈으로 확인했나 라는 것이다. 


그들의 말이 앞뒤가 맞으니까 '그렇겠지'라든가 '사실이겠다'라든가 생각한 것은 아닌가? 그런 경험으로 그들 말의 신뢰도를 높여 버린 것은 아닌가?


물론 예상력이 높은 사람들이 있다. 훈련을 통해서든 천성적 재능이든. 그들에 대한 부러움이 마음 속에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맛 상상력. 이것을 향상할 방법을 궁리해 보자.


이번 점심식사용 샌드위치의 조리 과정과 레시피를 다시 기억해 본다. 그 기억에 결과의 기억을 더해보자. 즉 기억을 실험 데이터로서 정의해서 축적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 샌드위치를 만들 때, 크림치즈 대신 버터를 사용하거나 마요네즈를 사용해서 맛을 축적해 보자. 이런 과정이라면, 약간의 무모함을 더해 경험하지 못한 맛을 상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상상의 결과와 상상의 내용은 함께 축적한다.


뭔가, 앞으로 나아갈 방법을 찾은 것 같다. 천성적 재능이 없을 때는 반복 시도와 확인을 데이터로 쌓는 방법이 있나 보다. 물론 이 방법은 상상의 내용이다. 결과를 확인될 것이다.


한 가지 종류의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이 더 있다. 어울리든 말든 상관없다는 태도의 그들이다. '어울릴 거야'라는 긍정적 접근 후 실패를 만나더라도 '내가 익숙하지 않아서야' 라고 툴툴 털어버리는 그런 사람들.


부정적인 기억에 얽매여 스스로를 고민하기보다, 긍정적인 기억만 남기고 자존감을 쌓아가는 것이 나의 이상적인 살아감의 태도라, 긍정인들을 부러워 한다.


이 부분도 시도 반복과, 결과를 더한 축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이미지는 여기서: Photo by Dave Michud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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