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13. 10:04ㆍ지난 글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사람의 말이다. 특히 내가 따르거나 무시할 수 없는 사람들의 말은 센 영향을 미친다. 그런 영향력 강한 이들이 제시한 법칙들에 익숙해져 간다. 타고난 유전자이듯, 지키지 않으면 언제든 뒤통수를 때릴 감시자가 붙어 있는 듯.
내가 사는 세계는 어떤 세계인가? 지구,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강남구 이런 거는 내가 사는 세계가 아니다. 소위 ‘생활권’으로 지칭하는 것이 더 익숙할 수 있는 용어, ‘내가 사는 세계’.
TV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지 않나? 재벌 집 자녀의 부모, 스타 셀럽의 매니저, 가끔 헤어지려는 연인이 하는 말, ‘너와 우리는 사는 세계가 달라!’. 엄청 짜증내며 들었던 그 대사가 실제 세상에 존재한다.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 치러야 할 것은 통과의례이다. 지지리 궁상에 인맥이라곤 하나도 없는 사람이 노력과 재능에 힘입어 ‘큰 물’에 들어가려면 ‘시험’이라는 통과의례를 치러야 한다. 인연으로 만나 애정을 키워왔지만 재벌 집 자녀와 결혼하려면 치러야 할 통과의례가 있다. 우연히 스타 셀럽을 만나 서로 통함을 알고 정말 조용히 애정을 키워오다가 이제 함께 하려 할 때 일반인은 통과의례를 치러야 한다.
이제 느끼겠나? 세상은 인구수만큼, 혹은 크게 나누어 여러 개의 세계로 구성되어 있고, 우리는 필요와 이유에 따라 이 세계를 넘나든다. 어떤 세계는 두 번 다시 가지 못하기도 해 길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다. 분명 눈에 보이는데 그 곳이 길의 끝인 세계가 있다.
사람은 신의 법칙이든 자연의 법칙이든, 집안의 법칙이든, 회사의 법칙이든 태어난 이후 법칙에 놓이거나 스스로 자리를 잡게 된다. 내가 오늘에 이어 내일을 살 수 있는 법칙을 본능적으로 선택하는 듯하다. 이런 법칙은 스스로 발견하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말에 이끌리기도 하여 알게 된다.
“신발을 벗어 이렇게 놓아야지!”부터 시작해서, “이런 사람과 친하게 지내”, “물건은 이렇게 골라야지”, “동지니까 팥죽을 먹자” 등등. 대부분의 법칙은 “해야 한다”로 다가온다. 조금 부드럽게 “할 필요가 있다”로 다가오면 좋겠지만, 사람을 옥죄듯 다가온다.
출신이 어디이든 수많은 법칙이 나를 둘러싸게 되고 이것이 내가 사는 세계의 외벽이 된다. 이 벽은 들어오는 현상과 대상들을 여과한다. 살아보니 어떤 여과지는 제대로 된 여과지고 어떤 여과지는 다른 종류로 교체하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 그 여과지를 통과해 나에게 닿은 것들이 내가 사는 세계의 구성 요소가 된다. 여과지를 통과해 나에게 닿으면 그것을 ‘인연’이라 부르는 세계가 있다. 나타나고 다가오며 벌어지는 갖가지 현상들을 해석하는 법도 내가 사는 세계의 법칙에는 들어 있다. 어떤 법칙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둘러싸고 있다.
때로는 여과지가 의사결정을 하는 듯 보인다. 그럼 분노하게 된다. 우선 짜증이 난다. 한 쪼가리도 되지 않는 법칙에 내 삶이 휘둘릴까봐. 그런 무력감에. 법칙을 내 관할로 넣으려고 하는데 조그만 변경도 불가능한 법칙도 있어 보인다. 변경하려면 누군가의 눈치를 보게 된다. 이건 내 삶이 아니다.
그래서 언제나 메모하는 수첩을 꺼내어 생각나는 대로, 기억나는 대로 그 법칙들을 적어 나갔다. 정말 별거 아닌 거에 좌지우지 되고 있었구나 싶은 법칙도 있었다. 사람 정말 우습게 만들었다. 이렇게 정리를 시작한 것은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서 이고 내 목소리를 내 의사대로 내면서 부터다.
일부러 빨간색 펜으로 죽죽 지워나갔다. 어떤 것은 ‘잊고 있었어’ 같이 금구에 해당되는 것도 있었다. 얼추 지우고 나서 그것을 분류했다. 종교, 자연, 사람으로 구분했다. 종교나 철학에서 유래된 것, 자연 질서에 따른 것, 사람들이 주장한 것.
그런 다음, 깨끗한 종이에 정리된 법칙을 적고 눈을 감고 크게 숨을 세 번 쉬었다. 이유는 없다. 왜 3 번인지. 이것이 나만의 법칙이니까. 경험에 따른. 그러고 나면 흥분이 진정되니까. 그렇게 하기로 자신과 약속한 몇 안 되는 나만의 법칙이니까.
그 옆에 내 생각을 적어 개선해 나갔다. 아직 빈번하게 경험하지 못해 의견이 없는 법칙도 있었다. 그럼 옆에 (더 겪어 볼 것)이라고 메모한다.
정리는 한 1주일 정도 걸린 것 같다. 정리가 되고 휴대용 기기에 메모를 하고 항상 메모를 열어 두었다. 내가 익숙해질 때까지. 상기되면 법칙을 참고했다. 중간에 나의 법칙을 수정하기도 했다.
나의 법칙은 내가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게 함이 목표다. 다가오는 대상, 현상의 여과 기준은 닿았을 때 내가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나 여부이다. 올바르게 나아감이란 내가 정한 목표에 정직선으로 막힘없이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빨간색 펜으로 쭉쭉 그어버린 법칙에 따르면 이는 미친 짓이다. 그래서 나만의 법칙을 정하면서 이를 지켜나가는 것을, 반복되고 변화 적은 일상을 바꿀 ‘모험’으로 정의했다. 만화 원피스의 루피는 작은 나룻배로 항해를 시작했다. 수많은 장애물을 만났고 자신의 신념을 우직하게 밀고 나갔다. 그런 그의 모험에 팬들은 환호한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팬들의 환호가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그의 성격을 내 법칙화 하는 것이다.
인생의 모험이란, 어쩌면 당연한, 자기 의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공포(겁을 내거나, 두려워하거나, 넘겨짚고 염려하는 모든 인간들)에 둘러싸여 끊임없이 설득을 당하겠지만 결코 신념을 굽히지 않는 삶이 바로 모험이지 않을까?
나만의 법칙을 정하고 그를 실천에 옮기는 것. 어쩌면 후회할 지도 모른다. 먹은 마음은 주어 담을 수 있지만 행동은 주어 담을 수 없다. 그래서 상대는 행동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맞는 말 같다. 그것이 페르소나일 지라도 그가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이 그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니까. 행동이 진실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능숙해져야 할 부분은 ‘왜 저런 행동을 할까’이니까. 이렇게 세상을 보는 방식이 내 법칙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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