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29. 12:28ㆍ지난 글
당시엔 지상파 TV 방송뿐이었다. 주로 아침 방송에서 레시피가 소개됐다. 여성 월간지도 좋은 레시피 소스였다. B5 노트에 하나 둘 레시피가 쌓여갔다. 메모는 작성자만 알아볼 수 있도록 기재됐다. 20년 가까이 전업 주부로 지낸 어머니만 알아볼 레시피 기술법. 각 레시피의 특징적인 부분만 기술됐다. 나머지는 기록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의미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어머니가 조리한 가정식을 좋아할 것이다. ‘모든’과 ‘~ㄹ 것이다’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아마도 만화나 드라마에서 손맛이 없는 어머니 등장인물을 본 경험 때문에 가능성을 열어둔다.
새로운 레시피는 그 동안 먹어 왔던 어머니 음식의 익숙함에 새로운 방법이 가미된 맛이 났다. 20여 년 동안 어머니가 맞춘 간에 익숙한 입맛에 새로운 레시피가 가미된 맛. ‘오~ 맛있어!’가 말로 표현된 찬사의 전부였지만 멈추지 않는 수저는 조리한 사람에 대한 큰 찬사이다.
레시피를 알려준 저자의 음식 맛을 알지 못한다. 레시피에는 ‘간장 2 큰 술, 설탕 1 큰 술’ 이렇게 적혀 있지만, 그것이 어떤 브랜드의 어떤 맛을 지닌 조미료인지 모른다. 우리 집과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다. 조미료의 차이는 맛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짜기만 한 조미료인지, 각 원료 맛이 잘 살아 있는 조미료인지, 조미료의 차이는 손맛의 차이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우리는 레시피 소개자가 조리한 음식의 맛을 알지 못한다. 어머니가 만든 새로운 메뉴의 맛만을 두고 판단할 뿐. 맛있었다.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의 조화 때문일까?
손맛 있는 부모의 가정식은 아이의 미각을 발달시키는 것 같다. 잘 조리된 음식에 익숙한 아이들은 타인의 음식의 맛을 판별할 수 있고, 민감한 사람인 경우 식재료를 추측하기도 한다. 나는 행운이었다. 조리와 음식에 관심을 갖고 실제로 행하게 됐으니. 맛에 민감하지 않고 음식 맛은 ‘좋아 혹은 아니야’ 정도 판별하지만.
나는 레시피를 기록하지 않는다. 북 마크 해둔다. 포털 앱의 북 마크 기능을 십분 활용한다. 조리와 음식에 관심이 많다보니 레시피 기사는 즐겨 본다. 그리고 ‘다음에 할까?’ 싶은 레시피는 북 마크 한다. 레시피를 검색할 경우는 미리 생각해둔 메뉴가 없을 때 식사를 준비하기 전 검색한다. ‘북 마크도 기록이야!’라고 한다면 그렇게 생각해도 좋다. 나는 기록으로 여기지 않으니 기록이 아니고 당신은 기록이라 여기니 기록이다. 그것으로 족하다. 합의 볼 사안이 아니다.
반복해서 한 음식이 있다. 가족들이 맛있다고 한 음식이 대부분이다. 다행이다. 반복해서 조리한 음식은 레시피를 손이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몸이 자동으로 움직이고, 가끔은 이렇게 저렿게 바꿔보기도 하니 말이다.
검색해서 찾은 레시피로 만든 음식을 아이 앞에 놓는다. 아이의 수저가 반복해서 움직인다. 표정은 찡그리지 않는다. 그래도 궁금하다. “맛 있어?” “응!”
아이는 “아빠의 자장밥이 제일 맛있어!”라고 말해 주었다. 음식점의 짜장 면을 구할 수 없으니 대부분 짜장 밥이 된다. 자장의 재료는 매번 다르다. 따장으로 만드는 경우, 짜장 가루로 만드는 경우. 재료의 차이는 조리 중 맛을 보며 조정을 한다. 그러다 보니 일관된 무엇이 생긴 것 같다. 자주하는 음식이라도 “아빠, 이번엔 조금 짜”일 경우도 있다. 그도 나무에서 떨어진다지 않나. 그렇다고 아이의 수저가 멈추는 일은 없다. 다행이다. 간혹 우동 면으로 짜장면을 한다. 그건 그것대로의 맛이 난다.
자장의 레시피는 검색하지 않는다. 때로는 고기와 야채를 식용유에 볶아서 만든다. 때로는 고기와 야채를 물에 삶아 만든다. 볶은 것과 삶은 것의 차이는 따장이 혹은 짜장 가루가 무마하는 것 같다. 커리도 마찬가지다. 만화 ‘심야식당’의 ‘어제의 카레’도 해봤다. 내 주위에는 레시피가 풍부하게 열려 있다. 손만 뻗으면 갈비찜부터 동파육까지 레시피를 구할 수 있다. 단지 내가 익숙해져야 하는 조리는 칼질(도공)과 불질(화공) 그리고 간 보기다.
메뉴가 달라도 가족에게 익숙한 맛은 어떤 범위 내에 있나 보다. 어차피 사람이 느끼는 맛이라는 것은, 단 맛, 쓴 맛, 매운 맛, 짠 맛, 신 맛, 그리고 감칠맛이므로,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범위 내에 들 경우 ‘맛있다’라는 결과를 낼 수 있다. 이 범위를 익숙함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사람에 따라 소요 시간은 차이가 나지만, 반복에 이길 장사는 없다. 반복하다 보면 가족의 맛 범위에든 새로운 메뉴를 만들 수 있다. 내 손맛에 가족들의 혀가 익숙해지듯, 가족들이 맛있다고 하는 범위에 내 혀가 익숙해진다. 그렇게 우리 집 가정식의 맛이 정해진다.
나는 아이에게 북 마크를 남길까? 그럼 적어도 나에 대한 추억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남기지 않을 것이다. 이미 혀에 남겨 두었으니. 또 아이의 조리는 아이의 음식을 만들 것이므로. ‘전통을 뛰어넘는 전통‘이라는 대사가 생각난다. 내 음식보다 높은 수준의 음식을 하길 바라지 않는다. 단지 아이가, 아이의 가족이 맛있다고 하는 음식을 할 수 있으면 된다. 아이도 나처럼 반복할 것이다.
'지난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gift-less (0) | 2020.07.02 |
---|---|
온다는 인플레이션에 대응할 방안 제안 (0) | 2020.07.01 |
설마, 내가 겪겠어? (0) | 2020.06.27 |
그래서, 어떻게 할까요? (0) | 2020.06.26 |
Digital Showroom (0) | 2020.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