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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캐쥬얼 컬처: 모든 이들이 하고 있다.
    지난 글 2017. 3. 6.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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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ria Konnikova



    Zhana Vrangalova는 문제에 봉착했다. 이른 봄 폭풍우 치던 날 그녀는 자신이 비상근 심리학 교수로 재직 중인 NYU 인근 작은 커피숍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우리가 토론을 위해 만나던 웹 사이트에 접속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그녀가 기술적 실수를 저질러서가 아니라, 그 사이트가 차단 당한 것이었다. 34세의, 두꺼운 안경을 걸친 드라마틱한 얼굴을 한 Vrangalova는, 지난 10년간 인간의 성적 취향에 대해 연구했으며, 특히 상호 헌신적 관계라는 전통적 규범에서 벗어난 성적 만남의 유형에 대해 연구했다. 2014년 개설된 casualsexproject.com은, 개인적인 추천을 받은 소수의 인원으로 작게 시작했지만, 현재 일 방문자가 약 5천명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다. 이 사이트의 방문자 대부분은 자연 발생적 인터넷 검색이나 기사 및 소셜 미디어 추천을 통해 유입됐다. 이 사이트에는 22,000여 건의 의견 개진이 수록되어 있으며, 각각의 남녀에 편중 됨이 없으며, 철자 오류 시 인터넷 보안 필터에 의해 경고를 받을 수 있는 습관 유형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게재되어 있었다. 이 사이트는 원-나이트 스탠드(one-night stand)나 기타 덜 관습적인 성적 행위에 관한 개방적 토론을 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었다. 우리가 캐쥬얼 컬처에 참여하게 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것을 즐기고 있나? 캐쥬얼 컬처는 어떤 식으로든 우리에게 유익한가, 아니면 해를 끼칠 수 있는가? 어쨌든, 캐쥬얼 컬처를 하는 주체가 정말 “우리”인가?


    대학생 중 최대 80%가 상호 헌신적 관계에서 벗어난 성적 행동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한다 -  이 수치는 점점 더 느슨해지는 사회적 관행, 술의 힘을 비는 사람들의 확산, 그리고 폭력성이 저변에 깔린 사교 문화의 결과가 반영된 현상이다. 비평가들은 캐쥬얼 컬처가 널리 펴지는 것을, 사회 전체를 “전염병”이 점령한 것으로 간주한다. 우리가 듣기로는, 훅업 문화는 여성들을 비하하고, 안정적이며 성숙한 관계를 구축하는 우리의 능력을 파괴하고 있다.


    이러한 경고는 예전에도 있었다. 노라 존슨(Nora Johnson)은 1957년 글을 통해, 대학 캠퍼스 내에서의 난잡한 성행위에 눈살을 찌프리며, “여러 이성과 난잡하게 잠을 자는 것은 감정적으로, 육체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위험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후 사회는 외양적으로는 자유로워졌지만, 캐쥬얼 컬처 행위에 대한 비판은 펴져나가기만 했다. 지난 해 인류학자 Peter Wood는 캐쥬얼 컬처의 등장을 “인간 본성에 대한 도전(assault)”라 부르며, 보수주의 매체 Weekly Standard 기사에서 이를 논했다. 심지어 이 잡지는 거의 의미를 둘 필요 없는 평상시의 성적 행위도 문제가 될 수 있는 힘의 불균형을 동반한다고 논할 정도였다.


    다른 이들은 캐쥬얼 컬처가 보편화 되는 것을 사회 진보의 징후로 받아들였다. 2012년부터 널리 읽혀지고 있는 Atlantic의 기사 “불륜에 쳐한 소년들(Boys on the side)”에서 Hanna Rosin은, 여성들이 자신의 욕구와 경력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집요한 구혼자들을 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캐쥬얼 컬처의 가치를 탐험의 도구와 페미니즘적 사고로서 믿고 있음이 명백한 그녀 역시, 캐쥬얼 컬처가 의미 있는 최종 목표는 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 듯 보였다. “결국 남성에게나 여성에게나, 더 깊은 인간 관계에 대한 열망은 항상 모든 것을 이겨낸다”고 썼으니 말이다.


    캐쥬얼 컬처 프로젝트는, 캐쥬얼 컬처에 대해 이런 식으로 만연된 서사들에 대한 Vrangalova의 불만에서 탄생했다. 카페에서 그녀는 나에게 “나를 지루하게 만드는 것은 캐쥬얼 컬처에 대한 토론에 다양성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캐쥬얼 컬처는 대학생들의 일상처럼 묘사되고 있어. 그리고 항상 여성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고.”


    Vrangalova가 국한된 대화를 펼쳐내려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녀가 성 심리학을 배우던, 마케도니아의 학부생 시절, 레즈비언 및 게이의 성적 태도의 발달에 관한 졸업 논문을 쓰면서 문화적 금기에 도전했다. 최종적으로 Vrangalova는 Cornell의 발달 심리학 프로그램에서 캐쥬얼 컬처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 연구 중 하나는, 1년 동안 666명의 신입생 그룹을 따라 다니며, 캐쥬얼 컬처에 참여하는 것이 정신적 건강, 즉 우울증, 불안, 삶의 만족도 그리고 자부심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 확인하는 것이다. 다른 연구에서는 800명 이상의 학부생을 대상으로, 캐쥬얼 컬처에 참여한 개인이 타인에 의해 희생 당한다고 느끼는지 아니면 사회적으로 더 고립된다고 느끼는 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결과: 처음 연구는 ‘그렇다’ 였고 두번째 연구는 ‘아니다’ 였다.)  이 연구들은 충분히 흥미로워서, 그녀가 있던 NYU로부터, 캐쥬얼 섹스에 참여한 개인들에 대해 비전통적 성적 행위의 효과와 관련된 일부 문제를 추가적으로 탐색하자 제안을 받을 정도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Vrangalova는 자신의 지식에, 그리고 이 분야 전체에 틈(gap)이 있음을 자각하게 됐다. 캐쥬얼 컬처는 심리학에서 많이 탐구된 분야였지만, 그녀의 조사팀이 확보한 데이터 대부분 - 그리고 그녀가 마주쳤던, 다른 실험적 연구 대부분 - 이 대학생으로부터 취해졌다. (이것은 심리학 연구에서의 공통적 문제이다. 학생들은 연구자들이 활용하기 편리한 집단이다.) 국가 단위의 설문 조사는 있었지만, 대학생 외 집단에 대한 상세 데이터는 희박하다. 14세부터 94세 남녀 6,000명을 대상으로 한 전국 대표 표본을 조사한, 미국 최대인 성적 태도에 관한 국가 연구에서 조차, 그들이 참여한 만남(encounter) 중 “캐쥬얼 하다”고 할 수 있는 만남은 얼마나 되는 지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았다. 


    성 연구는 시작부터 사회적 편견(stigma)의 제한을 받아 왔다. 이 분야의 선구자 Alfred Kinsey는 성 행위에 대한 인터뷰에 수십 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의 책은 팔렸지만, 객관적 관점이 부족해 널리 비판 받았다. 프로이트처럼 그는, 억압받은 성이 사회적 행동의 뿌리라고 믿었으며, 심지어 그의 결론이 대표성이 적은 설문조사에 기반하고 있었지만 지지를 받기도 했다. 그는 또한 성 행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편한, 자원 봉사자나 수감자 같은 편리한 샘플 그룹을 사용했다.


    1950대가 되면서 연구는 더 진전된다. William Masters와 Virginia Johnson은 성적 습관을 공개적으로 물었으며, 심지어 성 행위까지 관찰했다. 그들의 데이터 역시 의심을 받았다: 실험실에서 성 행위를 가진 사람이 미국인의 평균적 데이터를 보여줄 수 있나? 더 문제가 되는 부분은, Masters와 Johnson이 그들의 연구 결과를 쉽게 착색할 수 있는 편견을 드러내며, 동성애를 “치료”하려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캐쥬얼 컬처에 대한 데이터를 찾을 때 우선 주목할 것 중 하나는, 대학생이 아닌 사람에 대한 숫자의 경우, 대부분의 경우, 학계 밖에서 수행된 연구들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OkCupid 사용자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사용자 중 10.3~15.5%가 상호 헌신적 관계보다 캐쥬얼 컬처를 찾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Guardian의 진행한 2014년 영국 성 조사에 따르면, 모든 응답자의 거의 절반이 원-나이트 스탠드에 참여했고(남성 55%, 여성 43%), 이성간 교제(48%)보다 동성(66%) 교제에 참여했다고 답했다. 그들 중 1/5이 모르는 사람과 잤다고 답했다.


    캐쥬얼 컬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Vrangalova는 학술 연구에 원 데이터를 제공할 사용자 기반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 현재 그녀는, 사람들이 사이트에 방문해 질문에 답변하고 덧글을 남기게 하고, 이를 살펴보고 있다. Cornell에서 Vrangalova를 지도한 Ritch Savin-Williams는, “개인들이 진실되고 사려 깊은 답변을 할 수 있게 하는 전통적 개념과, 객관적 접근법을 가진 연구 설계에 도전하려는” 그녀의 의지에 특히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 결과로 이 사이트는, - 경쟁자가 많지 않은 - 전세계 캐쥬얼 컬처 습관에 대한 가장 거대한 정보 저장소가 된다. 이야기를 공유한 사람들의 범위는, 10대부터 퇴직자(Vrangalova의 조사 참가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70대이다)까지이고, 도시 거주자 및 교외 거주자, 대학원 수준의 전문인(샘플의 1/4)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사람들(약 1/4)이 포함되어 있다. 참가자의 대다수가 종교를 가지고 있진 않지만, 1/3에 못 미치는 사람들이 다소 “종교적인” 성향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이 백인이며, 흑인, 라틴계 그리고 다른 인종 및 민족도 포함되어 있다. 이 조사 초기 기부자들은 약 60%가 여성이었지만, 지금은 70%가 남성이다. (이것은 전형적 행동 양식과 일치한다. 즉, 남자들은 여성보다 성적 편력(sexual exploits)에 대해 떠벌이기 “좋아한다”.) 누구나 자신의 인구통계학적 데이터, 감정, 성격적 특성, 사회적 태도, 그리고 음주 습관 같은 행동 패턴을 반영한 개인 정보와 함께 이야기를 제출할 수 있다. 데이터 수집은 선택 메뉴와 평가 척도를 사용해 표준화 되어 있다. 


    아직까지, 그 사이트는 임상적 의미와는 거리가 있다. 이 홈 페이지는 성적 경험의 카테고리에 따라 컬러 코드가 부여된, 다채로운 사각형 모자이크로 꾸며져 있다(청색: “원-나이트 스탠드”; 보라: “그룹 섹스”; 회색: 이상하게 들리지만 “여러 명 중 첫 번째 사람”). 각 카테고리마다 발췌 인용문이 강조되어 있다(“숙녀분들, 젊고 핫한 라틴계 종마가 없다면 하나 구하러 가야 한다!”). 많은 응답들이 자신의 경험을 과하게 표현하기 위해 자랑하거나 도발하거나 떠벌이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그것을 읽으며, 나는 연구 프로젝트의 일부라 느껴지기 보다 기분 좋은 자극에 전념하는 사회 구성원을 보는 것 같았다. 


    Vrangalova는 캐쥬얼 컬처 프로젝트가 데이터 수집에 있어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접근법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처음으로 인정했다. 무작위 할당도, 통제도, 실험 조건도 없다. 그 데이터는 일반적 인구 집단을 대표하지 못한다. 참가자들은 자발적 선택으로 참가하고 있고, 이는 필연적으로 결과를 착색한다. 시간을 내어 작성하는 경우, 긍정적인 경험에 대한 글을 남길 가능성이 크다. 또한 당신은 대중과 자신의 즐긴 일을 상세히 공유하고자 하는 일종의 개성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다수의 사회 과학 연구가 고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가 캐쥬얼 컬처 프로젝트에도 있다. 그들이 우리가 듣길 원하거나 우리가 그들이 말하길 원한다 생각하는 것보다, 응답자들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확인할 수 있는, 외부적 행동 검증 과정이 없다. 


    이러한 이러한 모든 결함에도 불구하고, 캐쥬얼 컬처 프로젝트는 특정 집단의 성적 습관의 자취를 보여주는 매혹적인 창을 제공한다. 새로운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을 수 있지만,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캐쥬얼 섹스에 참가하는지 혹은 캐쥬얼 컬처가 어떤 느낌을 들게 하는 지에 대한 생각을 확장하여, 가정(assumption)에 뉘앙스를 부여할 수 있다. 내가 Vrangalova와의 미팅 후 항목들을 훑어 보다가, 70대에 캐쥬얼한 만남을 하는 동안 자신에 대한 새로운 어떤 것을 배운 한 남자의 말을 우연히 발견했다. “이전에 나는 누구도 나를 혼자 bj에 데려갈 수 없다고 말했다. 더 나은 것을 배운 것 같다”라고 그는 썼다. 대표성이 있는 연령과 인구 통계학적 그룹을 반영함으로써, 캐쥬얼 컬처 프로젝트로 인해, 캐쥬얼 컬처가 젊은이들 사이에서만 변화하는 사회적 관습의 산물이라는, 널리 알려진 서사는 약화되고 있다. 만일 캐쥬얼 컬처가 대학생들만의 전유물이 아닐 경우, 구 세대 사이에서 캐쥬얼 컬처에 참여하는 것을 꺼려함이 있다고 예상할 수 있으며, 이는 이전 “훅업 문화” 시대에 성장했을 거라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꺼림이 있었는 지는 확실하지 않다.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캐쥬얼 컬처에 참여한다는 것을 상기 시키는 것은, 우리가 3 가지 가능성 있는 서사를 상상하게 할 수 있다. 첫째, 훅업 문화가 상승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아마도 실제로는 새로운 시각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데이트 및 자유 연애와 관련된 규범이 변화되던 60대 사람들이 완전히 제외되지 않았다. 70대 사람들이 캐쥬얼 만남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태도 역시 그들 문화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거의 상반되는 설명이 있다. 캐쥬얼 컬처가 이제는 전형적 행동양식이 아니며, 전에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어떤 세대에도, 비 전통적 영역에서 성적 만족을 추구하는 개인은 항상 있어 왔다는 것이다.


    세번째는, 캐쥬얼 컬처 문화가 대학 훅업 문화에서 시작한 것이라는 서사와 가장 일치하는 것으로, 사람들은 서로 다른 이유 때문에 캐쥬얼하게 훅업한다는 것이다. 일부 젊은이들은 그들이 원할 것이라 말하는 문화를 감당할 수 없다고 느끼거나 그런 문화에 둘러 쌓여 있기 때문에 캐쥬얼 컬처를 행한다. (이 사이트 데이터에 대한 Vrangalova의 예비 분석에 따르면, 알코올이 노년 층보다 젊은 층의 캐쥬얼 컬처 경험에 더 많이 관여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노인들은 더 이상 사회가 어떻게 생각하는 지에 신경쓰지 않는다. 이러한 편안함은, 누군가에겐 30대에, 누군가에게는 40 혹은 50대에 올 수 있고, 누군가는 평생 전혀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이 마지막 이론은 Vrangalova의 연구 결과 중 또 다른 하나와 관련이 있다. 그것은 그녀가 그것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 하나의 놀라움으로 온 것이라 그녀는 고백한다. 심지어 매우 편향된 샘플 중에서도 사이트에 기록된 모든 캐쥬얼 섹스 경험이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특히 여성과 젊은 참가자들이 수치심을 느꼈다 말할 가능성이 있다. (“어느 시점에 난 그의 위에 있었고, 그가 내게 강요할 리가 없었고 내가 동의했음에 틀림없다… 잘 모르겠지만”, 18세 청소년이 쓴 이 글은 훅업이 만족스럽지 못했고 그 다음 날 스트레스를 받았고, 염려하는 마음이 들었으며, 죄책감을 느꼈고 역겨웠다”고 설명한다.) “오르가즘은 없었다”는 태그가 붙은 스레드 모두에는 종종 불안함과 감정적인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Vrangalova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평정을 얻었다”고 말했다. “나는 대부분 성적 탐구와 경험에서 실제로 이익을 얻은 사람들에 둘러 싸여, 매우 성 긍정적 관점을 갖게 됐다. 연구를 통해 나는 동전의 양면을 보는 방법을 배웠다.”


    확실히 부정적 요인의 일부는 법률상 원인에 기인한다: 캐쥬얼 컬처는 헌신적 관계, 물리적 강요에서보다 더 자주 임신, 질병의 위험을 증가시킨다. 그러나 그 대신에 다수의 부정적 캐쥬얼 컬처 경험은 사회적 협약의 의미에서 기인된다. “두 성별 모두 성 행위 때문에 차별을 받았다고 느꼈다 보고 있다”고 Vrangalova는 말했다. 여성들이 캐쥬얼 컬처에 참가할 때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간주되는 반면, 남성들은 종종 자신이 캐쥬얼 컬처를 하지 않았는 지 여부를 다른 남자들에 의해 판단 받는다 느끼며, 자신이 한 경험으로 인해 사회적 기대가 떨어질 수 있다고 느낀다. 


    이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Vrangalova와 다른 이들이 캐쥬얼 컬처 행위에 대한 설명을 찾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에서, 우리 사회가 캐쥬얼 컬처를 주목할 만한 것 - 일상적이라기 보다 오히려 이상한 것 - 으로 본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도 사람들이 물을 마시거나 화장실에 가고 싶은 욕구를 왜 느끼는지, 친구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이 왜 “일”인지, 연구 그룹이 왜 “늘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글을 쓰지 않는다.


    Vrangalova가 그녀의 프로젝트로 도움이 되길 바라는 부분은 수치심에 대한 부분이다. Vrangalova가 사용자에게 보낸 설문 조사의 한 응답자가 내놓은 말처럼, “이것은, 내가 캐쥬얼 섹스를 원한 것이 부끄럽게 느낄 일이거나 내가 한 행위가 잘못이라 느끼지 않고, 괜찮다라고 느끼게 도와 주었다.” 심리학자 James Pennebaker는 수십 년 간의 연구를 통해, 정서적 경험에 대한 글쓰기가, 그러한 경험에 대해 말하는 것이 이룰 수 없는 방식으로, 효과적인 형태의 치료법이 될 수 있음을 밝혀냈다. (나는 자신의 경험에 대해 자랑하는 방식으로 그 사이트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이점이 있는지 확인하지 못한다.) Vrangalova는 “자신의 블로그를 시작하지 않는 한 그것을 위한 출구는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나는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싶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 혹은 적어도 의심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 판단을 하지 않는, 친밀한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결국 캐쥬얼 컬처 프로젝트의 진정한 공헌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오늘날 캐쥬얼 컬처에 관한 숨기고 싶은 비밀은, 우리가 그것을 가지고 품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을 최상의 방법으로 공유하지 않는 것이다.


    Maria Konnikova는 newtorker.com의 기고가로, 심리학 및 과학 분야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다.

    *필자에 의해 본 기사가 번역되어 게재됨을 표시합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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